〈인물에 대한 비평〉

후한(後漢) 말에도 전한과 마찬가지로 환관들의 전횡이 심각했다.

한나라의 왕실은 갈수록 빛을 잃고 급기야 ‘태평도’라는 사교까지 유행해 민심을 흔들었다. 12대 황제인 영제(靈帝)17년에는 장각이라는 자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해 천하를 수중에 넣으려고 신도들을 모아 난을 일으켰는데 이른바 ‘황건(黃巾)의 난(亂)’이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궁 안은 온통 권모술수가 판을 치게 됐다. 이때 조조는 황건의 난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우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을 세운 조조는 젊었을 때 집안 일은 조금도 돌보지 않고 호걸들과 어울리며 사귀기를 즐겨 했다. 그 무렵, 여남(汝南)땅에서 허소와 그의 사촌 형 허정이라는 두 명사가 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매달 첫날(月旦)’이면 허소의 집에서 향당(鄕黨· 향-1만 2500집, 당-500집의 인물)을 뽑아 비평했는데, 그 비평이 매우 적절하면서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당시 ‘여남의 비평’으로 불리던 이 평을 들으려는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가 허소를 찾아와서 비평해 주기를 청했다.

“내가 수차례 평을 부탁했는데 어찌 해 주지 않는 것이오.” 그러나 난폭자로 소문난 조조의 청인지라 선뜻 응하기가 어려웠다. 조조가 재촉하자 허소는 마지못해 입을 열어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말했다.

“그대는 태평한 세상에서는 유능한 관리지만,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웅(姦雄)이 될 인물이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리해 천하를 얻기 위해서 군사를 일으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남을 위한 평가가 바르게 되지 않을시 어려움이 자기에게 되돌아온다는 그 이치를 알아야 한다.

<국전서예초대작가·前대전둔산초 교장 청곡 박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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