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봉 대전시립미술관장

선천적 재능을 타고나도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개발이 필요한 문화예술의 분야에서 장애의 핸디캡을 뛰어넘고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열정에 더 많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미술계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작가로 후천적인 질병으로 인해 장애를 가졌지만 한국미술계의 거목으로 우뚝 섰던 바보화가 김기창 작가가 있다.

그는 7세 때에 장티푸스를 앓은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고 17세의 나이에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어머니가 그림을 권유해 미술에 입문하기 시작했고, 스승 김은호 화백의 문하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쏟아 부어 그림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작가로 입문하는 과정인 선전에 입선하고 연속으로 입선과 특선을 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그 당시 한국의 미술계도 그의 열정에 격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근대미술 초기가 대부분 일본 유학을 하고 귀국한 작가들의 영향으로 사실성에 근거한 작품을 그린 것처럼 그도 스승의 영향을 받아 사실성에 충실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작품소재에 대한 단순성과 변화를 통하여 기존의 미술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조형의 세계를 새롭게 펼치며 한국 미술의 전통에서 현대로의 전환점에 획을 긋는 작가가 됐다.

그의 창작열뿐만이 아니라 한국미술계에 영향력을 줬던 것은 서양미술의 영향아래에서 현대적인 양식이 아닌 우리 고유의 전통화인 민화를 바탕으로 해 해학과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끼는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세상을 꾸밈 없이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담아서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 대중들을 그의 작품에 매료시켰다. 그의 작품들은 ‘바보화조’라는 화풍까지 탄생시켰고 회화의 순수성과 꾸밈없는 인간 본성들을 표현한 것으로, 작품들에서 느끼지는 감성들이 솔직함과 담백함, 순수함을 감지할 수 있다.

후학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도 열정을 가져 홍익대와 수도사대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한국 미술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이제 그가 타계한지 십여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60년의 화력으로 일구어진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친일행적 작가에 거론돼 그의 인생 후반기에 많은 논란을 낳고 그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한국화 작가로서의 인기도는 그의 살아생전에 누렸던 작가이기도 하다.

청주인근에 운보의 집을 짓고 칩거하며 단색조 추상양식의 ‘점과 선’ 연작을 선보이며 새로운 미술의 양식에 도전하고 노력했다. 시리즈로 구성된 그의 작품들은 대형 화선지에 봉걸레 같은 커다란 붓으로 점과 선이 가득 찬 대담한 구성의 수묵화로 마치 서양에서 유래한 액션페인팅과 같은 방법으로 작품에 몰두했지만 미술계에서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자중하는 삶을 살면서 지난 2001년 1월 23일 8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번 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바보화가 김기창전은 대전·충청지역을 연고로 해 작고한 작가를 초대해 전시를 개최하는 전람회로 바보가 그린 그림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매화가 만연한 봄날에 바보였지만 바보 같지 않은 삶을 살아온 바보화가의 화조에 흠뻑 빠져드는 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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