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현 사진작가

눈에도 종류가 있고, 제각각 다른 감정을 갖고 있다. 싸락눈, 함박눈, 송이눈, 진눈깨비….

눈길 작가 이청준에게 함박눈은 새벽녘 소복히 쌓인 숫눈길을 밟는 자욱마다 시린 청춘의 고빗사위요, 그 어머니에겐 그못지 않은 애시림이었다.

막내아들에게 밥 한끼 대접하려고 갖춰 놓은 어머니의 마음이 눈 내리는 길을 걸어가는 장면에서 와락 눈발처럼 다가온 ‘눈길’이란 소설에서 맞닥뜨린 눈은 그렇게 애처로웠다.

아들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뒤따르는 어머니, 눈발을 뒤집어쓰고 바다를 향해 엎드린 팽목항의 어머니들에게 내려쌓이는 눈은 차라리 처연했다. 잊히지 않는 눈길 하나가 다시금 떠오른다.

작년 이 맘때쯤,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신년행사에 초대받아 시내 모처에서 신년 하례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이다”하는 탄성과 함께 일제히 누구랄 것도 없이 창문으로 눈길을 주었다. 집을 나설 때 꾸물거리던 하늘이 흰 눈을 간간이 흩날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으나 일기예보에는 없던 일이다. 그러나 눈을 함께 보는 일체감이랄까 그런 것이 생겨난 듯도 했다.

이윽고 행사는 순조롭게 끝났다. 몇몇은 남아 뒷정리를 하고, 눈발에 겨운 또 몇몇은 무리지어 술집으로 갔다. 마침 들어선 곳이 옛날식 학교 문짝이 통유리를 대신하고, 장작 난로가 활활 타오르는 선술집이었다. 파전에 막걸리를 파는 복고풍 선술집이었다. 들어가 앉은 그곳에 걸맞게 우리는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고 몇 순배 술잔이 돌았다. 창문 너머 눈발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어 쌓이고 있었다. 만나면 좋은 지인들과 더불어 언제라도 푸근한 함박눈을 만난 정취에 취했으나, 나는 주춤주춤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젠 일어서야 한다. 귀가가 싶지 않을 터이니. 몇몇 지인들이 소맷부리를 잡았다. 나는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섰다. 사는 곳이 농로를 에돌고 산마루를 넘어야 하는 산협촌이기 때문이었다. 웬만한 눈길에도 발목이 잡히기 일쑤였으니 눈이 더 장하게 내리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산협촌 입구에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차를 집 앞까지 몰고 가는 건 무리였다. 어느새 진눈깨비로 바뀌어 흩날리는 눈비에 차를 아랫마을 회관 앞 공터에 주차하고 타달타달 500m 남짓한 길을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빙판으로 변할 터였다. 차를 미리 안전구역에 주차하고 산길을 걸어 올라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직업이 사진가이다 보니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었고, 양손엔 또 다른 짐이 들려 있었다.

산협촌의 고샅은 포장이 드문드문 뜯겨있었고 금세 물기 머금은 흙탕물이 구두에 배어들었다. 살을 에는 바람에 몸은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어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노라니 나와 같은 처지의 한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인이 노란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숫눈길을 발밤발밤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미끄러질세라 옹종거리며 걷는 그 품세며, 긴 머리칼에 흩뿌리며 쌓이는 싸락눈과 같은 무엇.

난 그때 불현듯 깨닫고 있었다. 아뿔사, 사람이 제 정신대로 산다는 것은 문명의 이기에 욕심껏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흙탕물이 구두에 배어들 듯 그저 그렇게 천천히 어울려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그날 나는 스물 두세살의 어여쁜 처녀를 카메라에 담는 대신 처녀를 따라가고 있던 흙탕물이 배어든 내 구두를 찍었다.

나는 여전히 그 구두를 신고 다니며 새로운 눈길을 만나곤 한다. 욕심내지 않고 살았어도 재앙이 닥친다.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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