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

후한(後漢) 건국 직후, 광무제 때 태수(太守)로 있던 팽총(彭寵)이 개국공신에 대한 평가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는 것을 눈치 챈 대장군(大將軍) 주부(朱浮)는 그의 비리를 꾸짖는 한 통의 글을 보냈다.

“그대는 자신의 공이 하늘 높은 줄로만 알고 있는 데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 보게. 옛날에 요동 사람 자신이 기르는 돼지의 대가리가 흰(白頭) 새끼를 낳자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하동(河東)까지 힘들게 가지고 가보니 그곳의 돼지는 모두 대가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즉시 돌아가고 말았다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폐하(光武帝)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 자네는 요동의 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팽총은 처음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반군(叛軍)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河北)에 포진(布陳)하고 있을 때에 3000여보병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해서 무난히 반군을 토벌하는데 힘썼다. 또 광무제가 옛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을 포위하고 공격했을 때에는 군란보급의 중책(重責)을 맡아 차질 없이 완수하는 등 여러 번 큰 공을 세워 좌명지신(佐命之臣·천자를 도와 천하 평정의 대업을 이루게 한 공신)의 한 사람이 됐다.그러나 오만불손하고 욕심이 끝없던 팽총은 주위 사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스스로 연왕(硏王)이라 일컫으며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 후 토벌 당하고 말았다.

요동시(遼東豕)팽총처럼 남이 본다면, 별로 이상하거나 대단치도 않은 공을 가지고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가리켜 그것을 비웃을 때 쓰이게 됐다. 많이 쓰이는 비슷한 말에 ‘정중지와’(井中之蛙)가 있으나, 이것은 견식이 좁고 작은 세계에서만 뽑 낼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자기만의 주장으로 일을 처리 하면 어려움이 곧 닥치게 된다.

<국전서예초대작가·前대전둔산초 교장 청곡 박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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