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백행운 을지대학교 대학원장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유명대학의 한 인문학 전공교수를 알고 있다.

그는 대학교육의 최종목표는 졸업생들이 직업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는 강력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고, 제자들이 사회에 나가 쓸모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거나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전공 외에도 어학실력, 컴퓨터 활용능력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단정한 태도와 프레젠테이션(PT) 훈련 그리고 취업에 관련된 것이라면 사소한 것들까지도 제자들에게 잔소리하며 독려했다고 한다. 10여년 이상의 노력한 끝에 그의 제자들은 100% 가까운 취업률을 달성하게 됐고, 교육계에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제자들은 하나 둘씩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그 교수는 제자들을 만날 때마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인데 조금만 더 참고 견뎌내라고 만류하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 제자가 그 교수를 찾아왔다. 잘 다니던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 회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느라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했다.

지금 전국의 모든 대학을 강타하고 있는 화두는 '구조개혁'이다. 출산율 저하로 인해 대학신입생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전임교원 확보율, 교육비 환원율 같은 각종 교육지표들을 향상시켜 대학 간의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많은 지표들 가운데서도 취업률은 대학 뿐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매우 민감한 지표이다. 옛날과 달리 대학을 나와서도 취업하기가 만만치 않은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업 위주의 스펙쌓기식 교육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채용돼 회사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빠르고 원활한 업무수행능력을 인정받지만 점차 다른 신입들도 업무처리능력이 향상되므로 그 차별성은 줄어들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정작 회사에서 인정받는 인재는 로봇처럼 빠른 업무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종합적인 사고력과 창의력, 그리고 깊은 소양에서 나오는 응용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동안 스펙위주의 교육에 치중하다보니 자율성과 교양의 습득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대학에서는 실용학문과 전문지식이란 이름 하에 철학이 없는 기술의 전수만을 강조해 왔다.

배움의 근본인 '왜'라는 질문이 빠져있었다.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자발적인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자신의 내면과 잠재능력을 정확하게 알게 해주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직업을 탐색하게 하고, 그 직업을 성공적으로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게 됐다.

대학은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곳이다. 전문성 뿐만 아니라 폭넓은 교양을 갖춘 글로벌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각종 소통능력 배양도 중요한 시대적 요청이 됐다.

기인에 가까울 정도로 파행적인 인생을 살았던 애플 설립자 스티브잡스는 인문학적 소양이 자신의 상상력을 키워준 원동력이라고 그의 자서전에서 고백하고 있다. 쌓아올린 그 잠재력이 결국은 그가 손대는 제품마다 고객들을 열광하게 만들 정도로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는가. 전문기술과 스펙을 쌓아주는 종래의 교육만으로는 급변하는 현재와 미래를 헤쳐나갈 수 없다.

대학은 영혼없는 일개미만을 양산할 것인가? 이것이 대학에서 현재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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