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철 충남도교육감

인성은 사람됨의 그릇이고 교육은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인성교육은 사람을 기르기 위한 큰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온전한 그릇만이 뜨거운 음식, 국물 음식을 담아 낼 수 있다. 지식과 지혜도 바른 인성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 자신의 미래를 밝히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빛을 발할 수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유기장인 이봉주 선생의 방짜유기는 세상을 정화하는 착한 그릇이다.

정해진 틀에 쇳물을 부어 그릇을 찍어내는 주물유기와 달리, 방짜유기는 천삼백 도의 불 속을 드나들며 달군 쇳덩이를 예닐곱 명의 장인이 혼신을 다해 메치고, 펴고, 우그려가며 모양을 잡아간다. 천 번의 두드림이 있어야 하나의 그릇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기는 생명의 그릇이 된다. 작업 중 날카로운 조각에 베거나 찔려도 쇳독을 앓거나 상처가 덧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방짜유기에 오염된 채소를 담가두면 농약 때문에 그릇이 까맣게 변하지만, 하루 정도 지나 다른 방짜에 옮겨 넣으면 더 이상 유기 그릇의 색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짜가 나쁜 균과 반응하여 유해성을 알려줌은 물론, 스스로 독을 정화시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볼품없이 까맣게 타들어갔던 놋그릇은 설거지만으로도 반질반질 맑은 제 빛을 다시 찾아낸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연탄이 널리 쓰이면서 연탄가스 독성인 일산화탄소를 흡수하여 변색된 유기를 더럽다고 멀리하며, 양은이나 스테인리스를 귀히 여기던 때가 있었다. 같은 시기에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육현장도 지식과 기술교육에 치중한 나머지 인성교육을 소홀히 여긴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29일,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 의무화와 인성평가 대입 반영을 위한 '인성교육진흥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압축 성장의 터널에 갇혀 청소년기의 교육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대학 입학 후엔 취업을 위한 역량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있다. 친구의 아픔에 선뜻 다가설 여유가 없는 학생, 자녀의 시험 성적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학부모, 수능에서 담당 교과를 선택하지 않은 학생에게 수업 대신 자습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교사의 배려가 서글프다. 국가 차원에서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일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교육현실을 볼 때, 그 동안 법이 없어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지 생각해 보고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한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의 비율을 잘 맞추어야 좋은 그릇, 소리가 아름다운 징과 꽹과리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실천하는 것과 아는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바른 인성을 가꿀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방짜유기는 예닐곱 명의 유기공이 우김질, 벼름질 등 아홉 단계 이상을 거쳐 만들어 진다. 여기서 바른 인성을 지닌 학생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학생과 동료,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와 학교가 연계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방짜는 '썩 좋은 놋쇠를 부어 만든 좋은 그릇'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매우 알차고 훌륭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어려운 시절에도 방짜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봉주 선생의 전통계승 노력으로 항균과 미네랄 성분 방출 등 그 효능이 알려져 유기는 다시 각광 받고 있다. 때를 같이하여 교육에서도 바른 인성과 시민의식이 화두로 떠올랐다. 바른 인성과 민주시민의식은 생각과 행동을 반듯하게 담을 수 있는 방짜유기다. 이제 제 빛을 지키고 나아가 다른 사람까지도 밝혀 줄 수 있는 방짜 인간을 만든 일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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