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오 대전문학관장

민족사의 새 페이지에 무릎 꿇어 이 책 한권을 봉정하고자 한다.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존재로서의 내 일생에 그래도 작은 갚음으로 삼아 바칠 수 있는 책이 된다면 좋겠다. 겨레시조를 부흥시키는데 밑거름이 되고자 뜨거운 마음으로 뜻을 가다듬어 ‘현대시조창작 이론과 실제의 모범교본’이란 한권의 책을 이광영 박사님과 함께 저작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 시조를 계승하자는 소망은 정당하다고 여기며, 보람 있는 작업을 위해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이 책을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어 연구를 거듭했고, 큰 경비는 아니지만 기꺼이 비용을 내어 출판한 것이다.

우리 문학이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과제로 ‘문학의 생활화를 통해 문화발전을 이룩하는 것’과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문학을 발전시켜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꼽아본다. 민족고유의 전통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시조창작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조는 우리 민족의 전통을 계승한 문학이면서도 유독 소외돼 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나라를 강탈당하고 주권을 잃은 상태에서 우리글을 쓰지 못하도록 강요당하고, 민족문학을 말살하려는 강점기의 압제 때문이었음을 뼈아프게 생각하면서도 회복시키지 못한 숙원이기 때문이다. 현대사조에 적합한 시조를 부흥시키고 혁신시켜 온 국민이 시조를 생활화하자는 외침이 ‘문학 독립운동’의 일환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남선을 중심으로 벌렸던 시조부흥운동과 이병기를 중심으로 일으킨 ‘시조혁신운동’이 바로 그것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강점당한 상태에서 그 뜻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했기에 이제라도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자유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형시도 정상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시가 바로 시조인데도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일본이 일본만의 시인 하이쿠를 세계적으로 자랑하며, 중국의 한시나 서양의 소네트가 그들의 시문학적 기반으로 삼고 있음에 비유해보면 우리 시조의 신세가 비감할 뿐이다.

그래서 시조를 사랑하고 바르게 보급하는데 앞장서고자 ‘한국 시조사랑 시인협회’를 만들고 지난해 말 정부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이 단체는 시조를 바르고 쉽게 쓸 수 있도록 발전시키고, 온 국민이 시조를 국민 시로 삼아 생활화하며, 우리의 시조를 세계적으로 보급하자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같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촌보(寸步)의 행진으로 시조시인들이 실천해야 할 두 가지 당면과제를 떠올려 본다. 첫째는 먼저 시조를 쓰는 작가들이 누구나 공감하고 감명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우선이요, 두 번째로는 단절되다시피 한 시조교육을 활성화시키는데 길잡이가 될 시조창작 모범교본을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물론 많은 시인들이 거듭 노력해서 좋은 시조집들이 계속 발간되고, 시조 교본을 개발하여 보급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 같은 맥락에서 지난해 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시조집을 발간했고 이어서 시조교본을 만든 것이다.

우직한 충정의 표현일지라도 감히 이 한권의 책을 바치고 싶었던 것이다. 책을 받으면 사장시키고 버리는 예가 비일비재한데 그런 불행을 당하지 않고 꼭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드릴 수 있다면 더없이 보람 있는 일로 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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