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숙애 충북도의회 의원

35년 만에 만난 여고 동창과 하룻밤 추억여행을 했다. 친구는 “우리 애들 둘 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어, 내 소원이었거든”이라고 말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친구의 소원은 단순하게도 성과급을 받아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녀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권했는데, 아마도 주변에 공무원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남편과 20여년 전 사별한 친구는 남편 동료들의 도움으로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사업소의 일용직으로 근무하며 혼자서 아이들을 키웠단다. 지금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지 몇 년 되었지만 20여년 근무한 친구의 급여는 150만원 남짓이다. 친구가 가장 억울해하는 것은 기관의 궂은 일과 행정 잡무를 도맡아 하고 평가 시 정규직들의 성과급 잔치를 구경만 하는 것이다. 고졸, 여성, 인맥이 없었던 친구는 갑자기 가장이 돼 비정규직의 비애를 처절히 경험한 ‘장그래’였다.

장그래는 얼마 전 종편에서 방영한 ‘미생’이란 드라마에서 한 비정규직 사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와 어려움 속에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다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어찌 보면 나의 친구는 한 직장을 20년간 다녔으니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장그래법(계약기간 4년 연장 안)’ 또한 상당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비정규직 청년들은 행복한 고민이라 말한다. 실제로 비정규직들이 받는 급여는 대부분 최저 임금, 학력은 학사·석사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무뿐 아니라 정규직들이 싫어하는 다양한 잡무를 대신 처리해야 한다. 동료로 인정받기란 불가능하다. 이들이 보기에 검정고시 고졸 출신에 대기업 비정규직 장그래는 아끼고 챙겨주는 오 차장이나 김 대리 같은 동료가 있어 부러운 대상이다.

누가 계약기간을 2년이라 했는가? 청년들에게 물어보라. 실제 공고되는 청년일자리의 대부분은 계약기간 3개월, 6개월, 8개월, 10개월인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 절망스런 일은 공공영역마저 청소 등의 업무는 이미 용역회사로 넘어갔고,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이 된지 오래다.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도 경제의 주역이라며 떠받드는 대기업은 다양한 갑질로 종사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심지어 정부와 여당은 경제사범을 사면하거나 가석방하면 그들이 경제를 살리고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국민이 힘들고, 아프다고 절규하는데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참으라 한다. 일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독신세 신설을 운운한다. 생계도 불가능한 사회에서 출산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비정규직 청년들에겐 꿈과 희망, 비전이 있는, 미래가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가 없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들은 퇴직을 했거나 퇴직을 앞둔 베이비붐세대,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과거 산업 역군이었던 장그래의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룬다.

어찌 보면 문제 해결은 간단하다. 경제를 살리는 길, 저출산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는 공공기관의 일자리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 기업이 종사자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장그래의 생계가 보장될 때만이 경제활성화와 저출산문제 해결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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