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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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27)


"죄 없으신 내 어머님을 모함하여 곤위(坤位)를 빼앗고 목숨까지 빼앗은 무리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원수를 갚을 것이며 신하로서 폐비를 구출하지 않았거나 폐위를 찬성한 자들을 가려내서 죽일 자는 죽이고 죄 줄 자는 죄를 줄 것이오! 경은 곧 복직될 것인즉 조정에 나와서 과인을 보필하도록 하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오이다. 신이 늦게나마 전하의 지우(知遇)를 입어 다시 조정에 서게 되면 진심갈력하여 사군보국(仕君報國)하오리다."

임사홍은 방바닥에 엎드린 채 감격한 듯 흐느꼈다.

"자원아, 환궁하련다. 빨리 등불을 등대해라!"

왕은 밖에 대고 소리쳐 내시 김자원을 찾았다.

캄캄하고 고요하던 후원의 별당 주변에 등불과 횃불을 든 하인배로 변장한 내시들이 모여들었다.

"전하, 등불 대령하였사옵니다."

김자원이 마루로 기어올라가 꿇어앉아서 방문을 열었다.

왕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임사홍은 일어서서 설렁줄을 서너 번 잡아당기고는 왕의 뒤를 따라 나왔다.

왕의 환궁을 알리는 설렁 소리에 놀란 임숭재와 휘숙옹주, 임씨가 달려왔다.

왕이 그들의 전송을 받으며 등롱과 횃불을 든 내시들을 앞세우고 임사홍의 집을 나설 때쯤 그리 멀지 않은 창덕궁 보루각(報漏閣)에서 삼고(三鼓=자정)를 알리는 북소리가 밤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피비린 혈풍(風血)이 몰아칠 것이었다.

왕은 창덕궁에 돌아오자마자 숙직 중인 승지를 불러 폐비 당시의 시정기(時政記)를 찾아오라고 명하였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내시와 사알(司謁)이 선정전과 승정원 사이를 연락부절로 왔다갔다하였다.

빨리 시정기를 찾아오라는 어명은 빗발치듯하고 승정원에서 숙직을 하던 승지와 주서(注書)와 사관(史官)들은 잠자다 깨어 영문도 모른 채 산적해 있는 전적(典籍)더미를 뒤지느라고 허둥거렸다.

시정기란 시정(時政)에 있어서 역사상 자료가 될 만한 사실을 사관이 기록해 둔? 것이다.

왕이 별안간 폐비 당시의 시정기를 찾는 것은 폐비 사건의 전말과 그에 연루된 사람들의 행적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20년도 훨씬 더 지난 과거의 시정기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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