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대전시의회 의장

시간만큼 빠른 게 없다는 걸 새삼 실감한다. 특히 올해 느껴지는 시간의 빠르기는 예년의 몇 곱절은 되는 것 같다. 4월 16일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6월 4일을 목표로 정말 열심히 뛰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은 지금 생각해도 참 강행군이었다. 이어 7월, 제7대 의회가 시작되고 대전시의회 의정사상 처음으로 여성의장이 되며 더 바빠진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12월의 한복판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올 12월은 시작부터 첫눈과 함께 찾아온 갑작스런 추위로 몸을 움츠려야 했다. 내리는 눈이 싫지 않은 듯 자신의 몸에 차곡차곡 쌓으며 무표정하게 서있는 겨울나무를 보자, 문득 이런 글이 떠올랐다.

'인간의 평균수명쯤은 너끈히 넘긴 늙은 나무 아래 서 보면 자연과 생명에 경외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한겨울을 앙상하게 정말 늙은 모습으로 지내는 나무는 새봄이 되면 어김없이 젊어져서 연두 빛 새싹을, 여름에는 녹음을, 가을에는 열매와 단풍을 폭발시킨다. 겨울나무는 절대 죽은 것이 아니다. 이듬해 봄을 맞아 폭발시킬 새 생명을 잉태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은 당신의 팔순을 맞아 출간한 책 ‘생명이 자본이다’에서, 혹한의 겨울을 죽음이나 끝이 아니라 은총의 휴식이자 생명의 계절이라 말씀하셨다. 우리가 단순하게 추위를 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동물의 동면(冬眠)도 가혹한 경쟁과 노동으로부터 풀려나는 따뜻한 시간이란 것이다. 그래서 자연이 가져다 준 사랑이요 축복인 셈이며, 이 은총의 휴식을 통해서 나무에는 나이테가 하나 더 생긴다고 한다. 또한 예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한겨울 자신들이 사냥한 버펄로의 자궁을 갈라 그 속에 든 태아를 꺼내 보는 것으로 봄이 오는 것을 가늠했다고 한다. 따뜻한 공기나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이 아니라, 버펄로 자궁 속 생명이 자란 정도가 그들의 기준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한겨울 생명을 잉태한 버펄로처럼 겨울이야말로 대지 전체가 생명을 잉태한 계절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계절은 여름의 소낙비 속에서 왕성하게 초목들이 자라는 여름 벌판에 있지 않고, 우리의 상식을 뒤집어 눈 덮인 겨울철이야 말로 정말 대지가 살아있는 때라는 논리이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12월은 한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 아닌 생명의 계절이다. 이는 우리 의회도 마찬가지다. 특히 오늘은 제2차 정례회가 폐회하는 날이다. 보통 11월과 12월에 걸쳐 진행되는 제2차 정례회를 한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회기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음해의 시작을 알리는 회기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선 우리시 공직자들이 2015년에 하나씩 하나씩 고쳐나가야 할 일들을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지적한다. 또한 금번 회기에서 가장 중요한 심사대상은 바로 2015년 예산이다. 심사 중 여러 의원들이 대변한 시민의 입장은 내년도 예산 집행 시 꼼꼼히 반영될 것이다.

앞서 겨울나무는 죽은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을 잉태하고 있으며, 혹한의 겨울은 은총의 휴식이자 생명의 계절이라 말씀드렸다. 내년도 을미(乙未)년에 틔울 새싹과 녹음 그리고 열매와 단풍은 바로 이 겨울 우리가 잉태하고 있는 생명의 결과물 일 것이다. 여러분 각자가 잉태한 생명이 더 넓고 밝은 세상을 만나길 기원하며, 출발에 대한 두근거림을 담은 김동률의 노래 ‘출발’처럼 '아주 멀리까지…,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여러분의 2015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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