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지 4부 챙긴 노인 기소
생계형 범죄 기소남발 심해

지난 6월 폐지를 주워 생활하던 A(75) 씨는 대전 대덕구의 한 약국 앞의 배부함에 놓여 있던 무료 생활정보지 4부를 가져갔다.

‘A 씨가 생활정보지를 훔쳐갔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은 A 씨를 붙잡아 조사한 후 검찰에 송치했다. 사안이 경미할 경우 경찰서장의 권한으로 청구할 수 있는 ‘즉결심판’은 경찰 조사 과정에 논의되지 않았고, 경찰은 A 씨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이후 검찰 역시 ‘싯가 4만원 상당의 생활정보지 4부를 가져가 절취했다’는 한 문장짜리 혐의로 A 씨를 약식 기소했다. 경찰에 붙잡혀 검찰로 송치돼 기소된 후 재판을 치르는 과정에서 70대인 A 씨는 노구를 이끌고,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에 나가 ‘무가지 4부를 가져간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내용 등을 검토한 대전지방법원은 지난 13일 A(75) 씨의 혐의에 대해 결국 “사안이 경미하다”며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경찰과 검찰이 생계형 소액 단순 절도 등 경미한 범행마저도 과도한 기소남발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대전지법, 대전지검, 대전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 수사 단계에서 사안이 경미하고, 피의자의 사정에 따라 그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경찰서장의 권한으로 즉결심판 및 훈방 조치를 할 수 있다.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이하 즉결심판법)은 “범증이 명백하고 죄질이 경미한 범죄사건을 신속·적정한 절차로 심판하기 위해, 관할 경찰서장이 관할 법원에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우리 헌법(비례의 원칙)과 형사소송법 제247조, 즉결심판법 등 기소편의주의 준용규정에 근거해 경찰서장은 그 필요가 인정되는 특수한 경우 ‘훈방(훈계방면) 조치’할 수도 있다.

현행 형법이 초동 수사 단계에서 경찰에게 ‘입건(사법기관에서 사건을 접수하는 것, 정식 수사단계의 시작)’ 여부에 관한 권한을 주는 것은 과도한 사법절차로 인해 피의자가 회복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손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제 일선 경찰에선 노인들의 폐지 절도나 청소년의 단순 절도 등 사안이 매우 경미할 뿐 아니라 ‘낙인효과’가 우려되는 사안까지도 다른 강력범죄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일괄 입건해 검찰로 송치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의 한 일선 경찰은 “ ‘괜한 오해를 받기 싫다’, ‘귀찮다’ 등의 이유로 큰 고민 없이 이런 사건마저 검찰로 일괄 송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지역의 법조계 인사들은 “빈곤층이나 청소년의 경우 사법절차 자체가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경찰이 입건 여부를 판단할 때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예린 기자 floy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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