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럼] 최명환 유성한가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필자는 정신과 의사로 살면서 치료를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만나면서 대화를 통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내가 이해한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하지만 환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상처가 깊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정도가 깊을수록 대화하기는 어렵다. 이런 환자들을 볼 때 나는 환자와 비록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차원에 서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이런 환자들은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치료는 자신의 상처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어떻게 해서 세상과 자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도와주는 것이다.

최근에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나는 부모와의 이별이 만든 상처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영화에서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세상과 딸을 구하기 위해서 딸을 버려두고 떠나야만 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모순을 어린 딸은 이해할 수 없었고 아버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헤어짐의 슬픔 위에 오해로 인한 비극이 겹쳐졌다. 딸은 아빠를 오해하기 시작한다. 영웅심에 가득 차고 우주 비행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을 버린 것처럼 생각하고 아버지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나를 위해서 떠난 것과 무책임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비정한 아버지가 떠난 것 중 어느 것이 덜 고통스러울까?

영화에서 머피(총명한 어린 딸)는 비정한 아버지를 미워하기로 했다. 자신을 위해서 아빠도 어쩔 수 없이 떠났다고 생각했을 때 감당해야 할 죄책감도 면제되고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겪어야 할 슬픔도 피하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아빠를 미워하고 오해한다. 사랑하는 딸이 자신을 비정한 사람으로 보게 되는 걸 알게 된 아버지는 어땠을까? 자신은 딸을 버린 것이 아니다.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하고 딸을 구하기 위해 떠난 것이다. 어떻게든 딸에게 이런 자신의 진심을 알리고 싶어한다. 그렇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탄생했다.

필자는 세상과 단절하고 상처받은 상태로 지내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다.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당신이 보낸 과거가 슬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이 당신이 지금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이다. 많은 경우 환자들은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필자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하지만 난 희망하고 기대한다.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들이 버림 받을 만해서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이 우주에서 나와 당신이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듯 당신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도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길 기대한다. 그리고 작은 신호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지가 되듯 내가 전달한 메시지도 환자들의 인생을 변화시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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