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치른 학부모·수험생들은 혼란스럽다. 시험은 열흘 전에 끝났지만 출제오류 논란에서 증폭된 수능 전반의 결함 때문에 애꿎은 수험생들만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부터 시행된 수능에서 출제 오류는 모두 다섯 차례 있었다. 더구나 지난해 세계지리와 올해 영어·생명과학Ⅱ에서 발생한 오류는 이전 사례와는 판이하다. 단순히 출제진의 단순 실수나 부주의 탓이 아니라 출제와 검토과정의 근본적인 잘못에서 비롯된 탓이다.

수능 출제위원들은 한 달간 합숙하면서 문제를 출제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출제 가능한 기간은 고작 일주일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들은 EBS교재에서 출제하라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교재에 나온 문제를 변형하다 오류를 범했다. 또 출제위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수들의 출제내용에 대해 고교 교사들로 구성된 검토위원들은 제대로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렵다. 출제·검토진이 같은 대학이나 전공 출신의 선후배로 얽혀 있는 수능 마피아가 출제의 권한을 장악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드러났다.

수능출제방식을 손질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오류는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육당국은 우선적으로 수능출제 과정과 구조에 대한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출제기간을 충분히 보장하고, 출제·검토위원 수를 늘려야 한다. 지난해 세계지리의 경우 오류를 정정하지 않고 버티다 사태를 키웠고, 1년이 지나서야 피해학생 수백명이 정원 외 입학이나 편입을 통해 학교를 옮겨야 할 처지다. 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인가.

말로는 백년지대계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으나 당장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후약방문 식 교육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오늘 발표하는 생명과학Ⅱ의 경우 복수정답 인정 땐 전체평균이 1.3점 상승하고 4000명의 등급이 상승하게 된다. 한두 문제로 인해 빚어지는 당락과 희비교차는 수능생들에게 대혼란을 초래하게 돼있다.

변별력 없는 물 수능에 이어 출제오류에 이르기까지 '정상의 비정상화'를 만드는 교육당국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 수없이 많은 수시·정시 전형과 논술·면접 준비에 애를 태우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입장을 진중하게 헤아려보길 바란다. 장기적으로는 한계에 봉착한 기존 수능 체제의 재검토에 착수할 때가 되지 않았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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