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송기은 삼성화재보험 RC

지난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4·자·방 비리’와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 파기는 실로 점입가경이다. 100조원에 육박하는 4대강 삽질과 자원개발투자, 방위산업 비리 의혹은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극임이 점점 가시화하고 있다. 절대다수의 극심한 반대 여론에도 멈추지 않았던 4대강 사업의 폐해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한 해 유지·관리비만으로도 7200억여원이 소요된다.

자원개발 명목으로 해외 각지에 투자한 돈은 가히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또한 수상구조선인 통영함엔 첨단 군 장비가 아닌 어선용 어군 탐지기를 달아놓았다. 각종 군함의 엔진도 중고품이라서 훈련도중 수시로 꺼진다고 한다. 눈 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더니 쥐가 다 빼먹은 격이 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는 어르신 노인연금 20만원을 필두로, 지켜지는 공약을 헤아리는 것이 빠를 정도로 최악의 공약 이행률을 보이고 있다. 어느덧 2014년 한 해도 이제 서서히 마무리해야 할 11월의 하순이다. 곧 12월로 접어들고, 김장도 해야하고 겨우살이 준비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서민들의 무너져내린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부지런한 다람쥐는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양볼에 도토리를 가득 머금고 이곳저곳에 열심히 묻어놓는다. 그렇지만 그걸 다 기억하지는 못하기에 땅에 묻힌 많은 도토리들은 이듬해 새싹으로 돋아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올 한 해는 참으로 길고도 참담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 그저 살아내고 있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나날들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왔는가? 춥고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참혹하지는 않았으리라! 과연 잠 안자고 부지런히 일해서 잘 살게 됐다는 게 이런 삶일까. 지금 이 나라 이 사회에 상식은 통하는걸까. 루쉰은 혁명당원을 자처했으나 도둑으로 몰려서 싱겁게 총살당하는 ‘아Q의 운명’을 혁명 앞에서도 끄덕없는 지배력을 갖고 마을에 군림하는 지주와의 대결 양상으로 그려냄으로써, 신해혁명의 쓰디 쓴 좌절을 반영하고 있다.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리 속에서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아Q의 정신 구조를 희화해 철저히 파헤침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바로 아Q의 모델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로 중국사회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다.

역사의 특수성,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의 관점에서 접근해 볼 때 오늘 우리 사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절감한다. 과연 역사는 진보하고 인류 문명은 발전하는 것인가? 물질의 풍요가 곧 진보이고 발전인가? 재벌 기업이 대학을 장악하고 문학·사학·철학 등 인문학을 폐과하고 오직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지 오래인 현실에서 더이상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행복과의 조화는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차분히 다시 시작해야 한다. 빨리빨리의 조급증 문화에서 벗어나 느리게 갈 줄 아는 행보로 채움보다 비움이라는 승자독식이 아닌 나눔이라는 새로운 문화로 옮겨가야 한다. 우리는 오늘을 하나같이 아Q로 살고있진 않은지, 스스로 정신 승리법에 도취돼 맹목에 빠진 껍데기뿐인 삶을 살지는 않는가를 자문자답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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