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종 청주 수곡2동주민센터 주민복지팀장

흔히 ‘죽자 살자 대든다’고 하고 ‘너 죽고 나 죽자’ 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로 세차게 다그쳐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生)이 먼저이고 시간 지나 나중에야 모두 생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그래서도 안 되며 우선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때론 자신과도 속앓이 싸움을 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죽고 사는 문제일 것 같았던 일들이 단순 해프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근심과 걱정거리 대부분이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또한 별일도 아니고, 나머지 아주 작은 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결코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길을 놓고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올바르고 이치에 맞는 선택도 사회와 조직 속에서 개인은 너무 나약하기만 하다. 삶이 아름답지만 개개인 사람은 한 없이 약한 존재라고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왜곡된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직과 집단은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경쟁력에 내몰린다. 뒤에는 처지지 않아야 하고 옆 보다는 앞서야 하며 때론 저 앞도 따라 잡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전쟁은 옛말이고 어느 분야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놓고 경쟁력을 키우라고 주문한다.

이 세상에 발 딛고 살게 됐다는 것은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가족에선 형제끼리 또 부모와 자식 간에 상식적으론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다. 비교와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또한 ‘세계는 하나’, ‘또 하나의 가족’, ‘가족같이’ 모두가 하나임을 부르짖고 있으나 ‘형님먼저 아우먼저’와 ‘선배먼저 후배먼저’ 같은 선의의 경쟁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족에서 경쟁은 그 출혈이나 심정적 충격이 크다. 그에 못지않게 사회와 조직에서도 불필요한 경쟁은 회복도 어렵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경쟁을 부추기는 비용에 비해 화해와 소통의 비용이 훨씬 적고 필요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며 “다 너 잘 되라”고 또는 “다 잘 살자”고 봉사도 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다들 그러는데 자꾸만 경쟁에 내몰리는 느낌과 좋지 않는 후유증으로 인한 나쁜 현상과 수치는 계속 높아만 가고 있다.

자식과 자식을 비교하며 경쟁시키지 않고 또한 신이 인간을 경쟁시키지 않듯, 우선 자신과 자신을 죽자 살자 경쟁시키지 말자. 서로 믿고 그것이 쌓이면 신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서로 함께 일하며 함께 책임을 지고 바람직한 선의의 경쟁이 상식적 규범으로 안정적으로 자리매김 할 때 다 같이 잘 사는 사회가 될 것이다.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사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것이 잘 축적되고 다 같이 잘 사는 사회의 모습이다.

소수와 한 집단의 승리에서 부족한 1%를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경쟁에 동원돼 결국 낙오 아닌 낙오자가 되는 것보다 프로처럼 책임의식으로 일하고 아마추어처럼 늘 배우는 겸손이 보편화되는 사회에서는 경쟁도 선의로울 것이다.

가족과 신은 경쟁을 부추기지 않고 동물계에서도 동족끼리, 무리끼리는 불필요한 경쟁을 시키지 않는다.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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