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에 아들은 학교를 향했다. 그리고 어둠이 먹물처럼 사위(四圍)를 감쌀 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둠에서 출발해 어둠으로 귀휴하는 그 길이 얼마나 외로웠을까마는, 난 단 한 번도 자식의 안녕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인생에 대해서도 말을 섞지 않았다.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침묵했다. 난 항상 바빴고,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간혹 궁금하고, 묻고 싶고, 말하고 싶을 땐 여지없이 취해있었다. 그래서 또 침묵했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흐르는 '의도된 부침(浮沈)'이 끈을 잇는 최소한의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을 뿐이다. 바보였다. 끝까지 침묵했으면 좋았으련만….

▶사실은, 강한 척하려고 모른 체했다. 안 아픈 척하려고 피했다. 남들에게 기죽을까 떵떵거렸고, 내 눈에 밟힐까봐 큰소리쳤다. 책에서 천 가지 곡식이 쏟아져 나온다고 헛소리했으며, 열심히 공부하면 세상이 네 것이 된다며 싸구려 권학가(勸學歌)를 불렀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는 알량한 거짓말을 했고, 눈이 감기면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고 종용했다. 미안하다! 아들아. 먹고 싶을 때 사주지 못했고, 입고 싶을 때 사주지 못했다. 맘 놓고 과외 한번 시키지 못했다. 아빠의 아빠처럼 침묵했고, 아빠의 아빠처럼 무관심했다. 진눈깨비 쏟아지던 어느 겨울날, 네 손을 잡고 한없이 걷던 기억이 스친다. 그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 온기가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아들아 아니? 그 힘으로 견뎠다.

▶서열사회를 탓하면서 서열을 매긴 것에 대해 반성한다. '최선'을 다하라고 하면서 '최고'가 되길 바랐던 욕심을 반성한다. 멀고 험한 길 완주하라고 하면서 빨리 걷게 한 채찍질을 반성한다. 내가 저지른 짓은 아니지만 20년간 15차례 바뀐 비정상적인 수능제도도 반성한다.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기계처럼 오가며 얼마나 괴로웠니? 새파란 달빛 쏟아지는 골목길을 걸어오며 얼마나 두려웠니? 아플 자유조차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오며 얼마나 야속했니? 그걸 알면서도 무지했던 내가 오답이다. 성공은 실패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다던 네가 정답이다.

▶아빠는 뭐든지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후회할일들을 만들지 않는다. 학창시절이 후회스러웠고 청춘이 후회스러웠기에 후회 없도록 살려는 것이다. 네가 아빠가 되면, 조금은 아빠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아빠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래, 오늘이 바로 그 어둠을 떨치고 네가 어른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옷은 따뜻하게 입었니?”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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