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전나진 한남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컬쳐전공 교수

우리 학교 교수 몇 분들과 유적지 답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라 평소 주말엔 개방을 하지 않아서 관계자에게 미리 부탁해 입장을 하기로 하고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관계자가 출근을 하지 않아서 일행은 문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렸다. 일행 중 한 명이 상황을 설명하며 말했다. "관계자가 문 열어놓고 기다리다가 우리가 계속 안 오니까 그냥 갔대요." 다른 한 명이 말했다. "미리 연락을 해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또 다른 한 명이 저 쪽에서 걸어오며 말했다. "저 문 그냥 열고 들어가면 되잖아." 일행 중 두어명이 혹 뒷문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나즈막한 돌담장을 따라 뒤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일행이 타고 온 버스의 기사분이 이것을 보고 저만치에서 손짓하며 말했다. "화장실은 저 쪽이예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지식, 경험,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 우리 머릿속에서는 단어, 동작, 시간의 선택 등 많은 판단들이 이루어진다. 이 판단들은 대부분 자신의 지식, 경험, 사고 체계에 바탕해 이루어지는데, 이 체계를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많은 경험을 하고 사고를 하게 되면서 개인의 스키마도 점점 크고 단단해진다. 스키마가 크고 단단해진다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그만큼 지식과 경험이 많아지고 판단력도 발전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역기능은 스키마가 단단해지는 만큼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기존 스키마에 침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지식과 정보, 경험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기존에 자신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들 내에서 사고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앞선 답사에서의 예는 타인의 말 또는 상황보다는 각자 자신의 스키마에 의존해 소통을 하다 보니 생긴 불통의 상황이다. 스키마에만 의존한 소통의 역기능은 불통만이 아니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그 정보가 자신의 스키마내에 있는 기존의 정보 또는 가치체계와 부합하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1+1=2니까, 구름이 끼면 비가 오니까, 저 친구는 항상 왕따이니까, 이러한 안은 항상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등 새로운 정보는 스키마에 의해 당연시되고 정당화된다. 300여년 전 아이작 뉴튼이 자신의 스키마에 의존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당연히 여기고 의문을 품지 않았더라면 인류 과학의 역사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키마에만 의존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것, 이것이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의 시작이다. 왜, 어떻게, 또는 왜 아닌지(why not)를 비판하고 설명해보고자 하는 것에서 새로운 발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사회의 가치체계에 적용될 때에는 사회와 정치권력을 바꾸는 변혁의 힘이 되기도 한다. 스키마에 기대어 기존의 가치체계와 이데올로기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권력집단이 그들의 지속된 헤게모니를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끊임없는 질문과 도전이 새로운 생각과 가능성을 사회의 공론장으로 이끌어 기존의 것들과 경쟁하게 하며 보다 합리적이고 널리 수용될 수 있는 가치체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용된 새로운 가치체계와 이데올로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존의 것이 되고 사회가 변함에 따라 비판의 대상이 되며 또 다시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이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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