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럼] 박종선 청주참사랑교회 담임목사

야구경기 가운데 신바람나는 광경은 돌직구로 타자를 삼진아웃시키는 당당한 투수의 모습이다.

돌직구는 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타자의 중심을 뚫고 날아간다. 타자는 온다고 느낀 순간 방망이를 힘차게 휘두르지만 공은 포수의 손에 들어가 있다. 순간 관중은 박수와 환호로 투수를 연호하며 축제를 연다. 목회자들의 모임회의 차 설악지역에 있는 콘도를 찾았다. 가을 하늘이 청명하고 가을단풍과 상쾌한 공기가 가고 오는 길에 즐거움을 더 했다. 캄보디아, 중국 길림 등 해외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들의 보고도 있었다. 참 고맙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목회자들이다.

회의가 경기라면 투수의 돌직구가 나오면 좋으련만 회의내내 돌직구는 나오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고 식사시간이 되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식탁에서 이런 저런 회의에 대한 후문이 흘러 나온다. 마치 경기를 마치고 난 선수들을 보며 평가하는 관중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뒤에서 하는 말들이 그 토록 기다렸던 삼진아웃 시킬만한 돌직구들이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돌직구는 안타깝지만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에서 통용되고 있었다. 돌직구가 메이저 경기에서 그 역할을 하고, 보는 관중들을 열광케 했으면 좋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쉽다.

현재의 상황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성찰하고 더욱 성숙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는 거울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때론 돌직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돌직구를 맞아본 사람치고 아프지 않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돌직구에 맞았다고 그 자리에서 꼬꾸라져서 주저 앉으면 안된다. 다시 일어나 배트를 휘둘러야지 선수다.

그래서 돌직구를 일컽기를 거리를 걷다가 잠시 들여다 보는 거리의 거울에 비유한다. 사람들은 다들 목적지가 있어서 부지런히 길을 가는데 잘난 모습, 못난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때론 거울이 못난 모습을 보여 준다. 거울속에 못난 자기를 발견한 사람은 당장에 못난 모습을 가다듬고 조금은 멋진 모습으로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가야한다. 그런데 자기를 보여준 거울로 인해 그 자리에 머물러 서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대한민국 안전에 대한 돌직구가 날아다닌다. 관중은 환호하지만 삼진아웃은 나오지 않는다. 위력없는 돌직구의 향연앞에 관중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난다. 이 땅에 안전 돌직구를 과감하게 던져 관중을 환호와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갈 돌직구투수가 어디 없을까. 거울에 비친 불안한 사회구조와 안전 불감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돌직구 투수 말이다. 돌직구를 던지는 이들의 단점이라면 강한 타자는 피해서 던진다는 것이다. 강한 자에게는 슬로커브를 던지고 약한 자에게 무시무시한 돌직구를 던지는 것은 흥행몰이를 위한 보여주기로 보인다. 커브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잠시 눈속임을 위해 휘어다니거나 꺾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돌직구는 다르다. 한번 투수의 손을 떠나면 끝까지 달린다. 관중들에게 오래도록 좋은 돌직구 투수로 기억 되려면 약한 자에게는 한없는 자비와 긍휼로 슬로 슬로 커브를 드리우고 강한 자에게 더욱 강한 돌직구를 구사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밖에 나가서 내가 던질 만한 돌멩이를 찾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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