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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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동과 함께 찾아오는 아침은 희망이다. 사람이 40년간 하루 2시간가량 먼저 일어나면 2만 9000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는 하루 8시간 일하는 10년 치에 해당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아침을 잃었다. 동시에 식구(食口)와 식솔(食率)과의 눈요기를 잃었다. 밥상에 앉아 하루를 여는 창(窓), 밥상공동체도 잃었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부르는 것은 한집에서 함께 밥(한솥밥)을 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 20%는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 우린 평생 62t(교실 한 칸 정도)의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이 수치대로라면 밥상머리교육에 투여될 20t(아침밥)의 정(情)을 잃은 것이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그렇게 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는 말이 있다. 그런데 사랑은 밥도 먹여주고 떡도 나오게 한다. 밥 한 끼가 아니라, 세 끼의 농밀(濃密)한 교유이기에 그렇다. 그 '밥'이 없었다면 사랑도 인정도 없었을 것이다. 남녀가 만나서 차 마시고 영화보고 밥까지 먹었다면 결혼하는 사이로 인정하던 시절도 있었다.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는 ‘밥’이 ‘법’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식사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 자체도 이제 '눈칫밥'을 먹는 처지가 됐다.

▶요즘 개풀 뜯어먹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바로 9시 등교다. 현재 8시(학교마다 차이는 있음)인 등교시간을 1시간 늦추자는 것인데 찬반논란이 뜨겁다.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좀 더 잠을 재워보자는 진보교육감의 '기특한' 공약에서 촉발됐다. 사춘기 청소년의 생물학적 시계는 성인보다 2~4시간 정도 늦기 때문이라는 친절한 주석도 달았다. 그런데 9시 등교가 되려면 하교가 늦춰져야한다. 가뜩이나 '오후가 없는 삶'인데 수업시수를 맞추기 위해선 ‘밤이 없는 삶’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아침이 있던 아이들을 공부기계로 만들어놓은 게 누군가. 어른이다. '사람'이 아닌 '학생'으로 만든 것도 어른이다. '4당5락(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며 학원으로 내몬 것도 어른이다.

▶툭하면 뜯어고치는 수능(입시), 매년 털갈이하듯 바뀌는 초·중·고교 입시제도들, 사교육비 줄인다고 해놓고 점점 더 쪼그라드는 공교육, 책상 앞에 앉혀 놓으면 공부가 될 것이라 믿고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학부모, 대학들에게 거지 동냥 주듯 몇 푼 얹어주고는 서열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부…. 이 한심한 작태들은 어찌하고 아침잠, 아침밥 타령인지 아주 '진보'스럽기 그지없다. 9시 등교는 단순히 등교시간을 늦추는 문제가 아니라 가정 학교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한 우문우답(愚問愚答)일 뿐이다. 교육은 정치가 아니다. 제발 지도층 인사들이 밥값 좀 했으면 좋겠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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