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김지철 충남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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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햇살 아래 가을을 맞은 용봉산이 분주하다. 하얀 피부 자작나무 잎은 옅은 갈색 미소를 보이고, 상수리나무는 다람쥐를 불러들이기 위해 옹골찬 열매 몇 알을 산비탈에 슬쩍슬쩍 떨구고 있다. 게다가 군데군데 단풍나무의 수줍은 웃음이 붉은 빛을 풀어 내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바라본 용봉산은 그저 숲으로만 보였는데, 막상 가을 산을 오르며 마주한 나무들은 디디고 선 위치와 모양이 제 각각이다. 

마치 조회시간 운동장에 서있는 학생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 그저 다 같은 학생으로 보이지만, 국어 시간, 체육 시간, 학급회의 시간, 봉사활동 시간 등 교실에서 마주하면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다.

태양은 어느 나무에게나 공평하게 빛을 나누어 주며 숲을 살찌우는 반면, 우리는 성적이 좋은 학생에겐 우등상을 주어 가며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에게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주기 보다 공부의 중요성만 강조하며 힘들게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천년의 비바람을 견딘 나무는 천년 이상 가는 건축재로 쓰여 수천 년의 수명을 갖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나무에게 천년을 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 

집을 지을 때 수령이 오래된 반듯한 나무를 구해 기둥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기둥 못지않게 벽을 두를 나무, 문살을 깎고 대청마루에 얹을 나무도 없어서는 안 된다.

천년을 견딘 노송으로 지었다는 일본 호류사는 수령이 적더라도 북쪽 벽에 쓸 나무는 북쪽에서 자란 나무를, 동쪽 벽에 쓸 나무는 산의 동쪽에서 자란 나무를 골라 썼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가구 '전주장'을 만드는 용목은 어릴 적부터 앓아 온 병으로 몸통에 박힌 옹이와 뒤틀린 고사목에 그려진 용무늬를 이용한다고 한다.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빛이 된다는 산 어귀의 물푸레나무는 괭이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괭이자루와 아이의 세 살 버릇을 가르치는 회초리로 쓰인다. 산 중턱의 오동나무는 지팡이가 돼 할머니를 돕거나 악기의 몸통이 되어 소리를 만든다. 

깊은 산 자작나무는 팔만대장경이 되어 역사를 이야기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대신하는 도장이 돼 세상으로 나온다. 이렇듯 숲을 이루고 있는 모든 나무는 고유한 쓰임이 있다.

단일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바나나를 멸종위기에 몰아넣으며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성적이라는 단일 잣대로만 학생을 평가하는 학교문화는 단일종인 바나나가 마름병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학교폭력과 자살과 같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일원으로 정답을 빨리 찾아내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수행해 일의 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제 학교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지식의 양으로 성적을 매기는 일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건축재로 쓰일 학생이나 바이올린 악기통으로 자라는 학생에게는 그에 걸 맞는 맞춤식 교육을, 질병으로 고통 받는 학생에게는 전통가구의 용목으로 쓰일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한다.

7학년까지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는 어떤 시험도 보지 않으며, 고등학교 입학 전 인생학교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하는 덴마크는 세계 행복지수 1위의 국가가 됐다. 

각자 잘 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국회의원이 가사 도우미보다 대단하지 않으며,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한 사회를 이뤘다. 산 어귀부터 능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나무들이 각자의 쓰임이 있듯, 우리 학생들도 각자 소중한 역할로 미래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솟는다. 

단 한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가을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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