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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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마라톤에서 월계관을 쓴 케냐의 키메토는 6년 전까지만 해도 옥수수를 키우던 가난한 농부였다. 하지만 그는 2시간2분57초라는 세계신기록의 보유자가 됐다. 이는 42.195㎞를 100m당 평균 17초48의 속도로 뛴 것인데, 보통 사람들에겐 전력 질주에 가깝다. 1988년 에티오피아의 벨라이네 딘사모가 2시간6분대 기록에 진입한 뒤, 1999년 2시간5분대(모로코의 칼리드 카누치)를 찍을 때까지 11년이나 걸렸다. 평균 5년에 1분씩 단축된 것이다. 한국기록은 2000년 이봉주가 세운 2시간7분20초다. 그렇다면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만약 평탄한 코스에 15℃의 기온, 50% 습도에서 뛸 경우 1시간57분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록을 세우려면 100m를 16초대로 달려야 한다.

▶왜 케냐사람들은 잘 뛸까. 이들은 작은 키와 새처럼 길고 가는 다리를 가졌다. 고지대에서 유목생활(칼렌진 족)을 해왔기 때문에 유산소능력도 뛰어나다. 또 유년시절부터 맨발로 산을 넘고 들판을 달렸기에 우갈리(옥수수가루를 반죽해 찐 것)를 먹으면서도 체력이 남다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난에서 탈출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이들을 '최고의 철각'으로 만들었다. 케냐에서는 성공한 육상 선수가 정치인 다음으로 대접받는다.

▶그리스 병사가 마라톤 평원(아테네 동북방의 옛 싸움터)이 몇 십 ㎞인지 미리 알고 뛰었다면 시민들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는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이라는 드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이다. 서툴러도 꾸준히 내딛는 그 보폭이 완주로 가는 첫걸음이다. 도중에 기권해버리면 몸이든 마음이든 기권하는 습관이 생긴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월계관을 쓰지는 못해도 결승점까지는 가는 게 인생이다. 달리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잖은가. 이땐 비켜갈 수도 피해갈 수도 없다. 마라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원(敬遠)의 대상일 뿐이다.

▶150일 동안 150시간을 걷고 뛰고 있다. 거리로 따지면 1200㎞. 서울서 부산까지 왕복(832㎞)으로 뛰고 편도(416㎞)로 한 번 더 뛴 셈이다. 평균 시속 8㎞로 달려 4만 5000㎉(칼로리)를 소모하면서 11㎏가 몸에서 빠져나갔다. 한 장의 마른 나뭇잎처럼 온몸의 진액이 다 소진되며 살이 타고 뼈가 탄다. 그래도 끝을 향해 뛴다. 여기서 도망치면 앞으로도 곤란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또다시 도망갈 것 같아서다. 점적천석(點滴穿石),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했다. 아직 우리에게 끝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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