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황인호 대전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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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는 물론, 학교 어린이회장 선거나 심지어 동네 계모임의 대표를 뽑을 때도 선거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역시 선거에서 빠질수 없는 것이 매니페스토이다.

매니페스토란 개인이나 단체가 연설이나 문서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 대해 정치적 의도와 신념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선거공약의 의미로 쓰이며, 유권자가 선출직 후보자를 평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그런 만큼 선출직 후보자는 이행가능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하고자 매니페스토 작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개인적으로 선거를 일곱 번이나 치러 첫인상이 어느 정도 알려진 필자로서도 매니페스토의 중요성은 선거를 치를수록 실감한다.

그것은 선거가 갈수록 정책대결로 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다보니, 시민단체에서는 당선자들을 상대로 매니페스토상을 제정해 수상하기도 한다.

당선된 첫 해에는 얼마나 당선자의 선거공약이 공명하고 객관적이며, 구체적으로 이행가능한 것인지를 평가하고, 그 이후로는 선거공약을 실제로 매년 실천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수상한다.

선출직 공무원들이라고 해도 단체장을 빼고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을 평가해 수상하는 제도가 많지 않다보니, 의원들 입장에서는 매니페스토 수상실적도 소홀히 넘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매니페스토에 대한 회의감이 인다. 과연 당선자들의 매니페스토, 즉 공약이 유권자들 모두에게 정당하게 인정받은 것인가를 반문한다.

찬찬이 살펴보면 당선자의 공약은 극히 소수의 동의절차를 거쳤을 뿐이다. 지방선거율이 겨우 반타작에 불과한 50% 정도고, 거기에서도 당선자는 그저 줄잡아 50%쯤 표를 얻어 당선됐다고 보면, 전체 유권자의 25%가 당선자의 매니페스토에 동의했다는 얘기다.

당선자가 당선됐다고 희희낙락할 때, 그의 공약은 75%의 유권자가 냉담하거나 거부하거나 마지못해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도 당선자는 당선됐으니 하루바삐 공약을 실천해 보이겠다고 떠벌린다.

그러니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선거 당시 당선자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75%의 유권자에게, 나를 뽑지 않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는가 지켜보라고 항의라도 하듯이 몰아가려고만 한다.

곰곰이, 그리고 최대한 몸을 낮춰 생각컨대 각각의 공약을 이행하기에 앞서 전체 유권자의 최대한 70% 정도까지 동의를 얻는 인내심 어린 절차가 필요하다. 당선자들이 기고만장해 최대한 다수의 동의없이 공약을 이행한 것들이 전국을 흉물로 만들고 있다.

전국적으로 곳곳에 쓸모없이 방치된 공항들이나 운하의 사생아격인 4대강 사업들로부터, 우리 지역에서는 500억원이 든 목척교 르네상스사업과 165억원이 든 스카이로드사업, 190억원이 투입된 엑스포 무빙쉘터사업 등 첩첩이 쌓여만 간다. 한때 경전철 붐이 불면서 김해~부산, 의정부에 이어 용인으로 와서는 사단이 나도 크게 났다.

분노한 용인시민들이 나서서 마침내 전현직 시장과 시의원, 공무원 등을 집단으로 소송한 것이다. 이들에게 초기투자비용 1조 127억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으로, 그동안 여러 지자체에서 주민소환제는 있었지만 전대미문의 주민소송제가 발발하기는 처음인 것이다.

이로 인해 임명직 공무원은 물론이고,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일반 기업들처럼 무한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 어디 자기 호주머니돈이라면 숱하게 점멸해가는 전국의 축제들이 하루살이 마냥 스쳐지나갈까? 매니페스토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이행하려면 유권자들을 부단히 설득해야 한다. 유권자 70% 이상의 동의만 확보된 사업이라면 공동의 책임일 것이고, 성공했다면 참여자치의 깃발을 들고 다함께 자축할 일이다. 이는 무엇보다 공금에 대한 외경의식과 맥을 같이 하니 어찌 주저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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