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글밭]
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한국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지난 달 먼 대륙에서 치러진 투표에 온통 관심이 쏠렸었다. 바로 영국 자치정부인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을 위한 투표 때문이었다.

투표 결과를 보니 분리 독립 찬성 44.6%, 반대 55.4%, 10% 이상의 격차로 독립이 좌절됐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독립보다는 경제적 안정을 택한 것이다.

영국은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4개 연합국으로 구성돼있다.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이지만 잉글랜드는 앵글로 색슨족으로 민족이 다르고, 스코틀랜드는 장로교이지만 잉글랜드는 성공회가 국교이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국이 신대륙을 발견한 후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던 청교도인들이 중심이 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정착지를 건설한 것을 알 것이다.

필자의 부친은 영국 도르셋 지역의 엔디컷 집안 출신으로 17세기 초 조상들이 미국을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의 모친은 1800년대 초반 스코틀랜드 북서부 인버니스에서 노바 스코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캠벨가 사람으로 자랑스러운 스코틀랜드 전통을 계승했다.

필자로부터 몇 세대를 거쳐 올라가면 영국, 특히 스코틀랜드와 깊은 뿌리를 두고 살았던 조상님들이 분명히 계실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스코틀랜드의 운명에 깊은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필자와 영국과의 인연은 또 있다. 신시내티 오일러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었던 부친은 1950년 풀브라이트 교환프로그램으로 영국 런던에 있는 토튼햄 중등학교 영어교사로 가게 됐다.

당시 15세였던 필자는 부친을 따라간 영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깊이 있게 영국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 해 영국에서 맞이한 크리스마스는 특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떠오른다.

성탄나무에 장식을 하고 그 주변에 서른 개 정도의 진짜 초에 불을 붙였을 때 따뜻하게 빛났던 장면을 떠올릴 때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그 행복했던 다음 날, 크리스마스 당일에 일어났던 사건은 영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스코틀랜드 학생 4명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있는 스콘 석(붉은 빛을 띄는 사암으로 대관식 때 쓰는 돌)을 훔쳐갔던 것이다.

스콘 석은 원래 스코틀랜드 수도원에 있던 돌로 왕의 대관식용 옥좌의 일부였다. 그 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침략해 왕권을 나타내는 표상인 돌을 런던으로 가져갔다.

그 돌로 대관식용 옥좌를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설치하면서 잉글랜드 왕이 스코틀랜드의 왕위에도 오르게 된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입장에서도 스콘 석은 독립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스콘 석이 도난당하는 역사적 사건이 마침 필자가 영국에 있을 때 일어났기 때문에 영국, 특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깊은 역사와 갈등을 엿볼 수 있었다.

투표의 결과가 나오기 까지 필자는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하는 것이 좋을지 대영제국의 연합국으로 남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봤다. 결론은 간단하다.

선거의 결과를 존중할 것이며 이번 투표 결과가 스코틀랜드의 자치권 향상과 경제적 지원을 이끄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보다도 이번 일을 통해 한 사람의 일생을 넘어 먼 과거까지 나 자신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면 참 신기하고 오묘하다. 필자는 현재를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의 역사가 긴 이야기가 나를 이끌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여겨질 때가 있다.

내 자손들 역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필자의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참, 허투루 살 수 없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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