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류용환 대전시립박물관장

예년 같으면 추석을 쇤지 한 달여 지난 지금쯤이면 수확한 온갖 곡식과 과일을 앞에 두고 조상에게 시제 지낼 준비로 분주해질 때다. 하지만 올해는 음력 9월이 윤달이기에 아직 한참이나 여유가 있다. 참고로 윤달은 태음력에 의한 것으로 1년에 한 달이 더 있는 달을 가리키는데 19년에 7번의 윤달이 오고, 윤년은 태양력에 따른 것으로 4년마다 2월이 29일까지 있는 해이다. 시제는 한식 또는 10월에 정기적으로 5대조 이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관행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5대 이상의 조상을 모시는 묘제를 시제라 한 반면 4대조에 대한 묘제는 사산제(私山祭)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시제는 묘에서 지낸다 하여 묘사(墓祀), 묘전제사(墓前祭祀)라고 하며, 일 년에 단 한 번 제사를 모신다고 의미로 세일제(歲一祭) 또는 세일사(歲一祀)라고도 한다.

주자가 지은 ‘가례(家禮)’에 의하면 시제는 2월, 5월, 8월, 11월 중에 사당에 모신 4대 조의 신주를 안채나 사랑채의 대청에 함께 모시고 지내는 제사로 가장 중히 여긴 제사였다. 따라서 주자가례를 신봉한 조선에서는 수많은 예서(禮書)가 간행됐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상례비요(喪禮備要)’와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서에서는 사시제(四時祭)를 중심으로 기제와 묘제를 설명했다. 국가제례인 종묘시향(宗廟時享)은 1월, 4월, 7월, 10월 중에 거행한 것에 반해, 사대부가 사시제는 그다음 달인 2월, 5월, 8월, 11월에 거행하도록 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경우에는 사당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주자가례’ 이후의 예서에서는 대부분 안채나 사랑채, 또는 제청에서 사당의 4대조 신주를 모셔다가 지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묘제를 중시해 사시마다 묘에서 절사를 지냈기 때문에 사시제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2월은 한식, 5월은 단오, 8월은 추석, 11월은 동지와 중복돼 율곡 선생의 경우 설과 단오에는 사당에서 차례를 한식과 추석에는 절사를 지내도록 했다. 나아가 시제와 속절 차례 및 절사를 절충하면서 설, 단오, 추석, 동지에는 사당에서 차례를, 한식 및 10월에는 묘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에 사당에서 지내는 사시제는 점차 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같은 4대 명일, 또는 5대 명일에 4대조에게 지내는 차례로 대체됐고 차례 음식도 명절 때마다 시식(時食) 또는 절식(節食)을 올리던 것에서 사시제 또는 기제에 준하도록 마련하게 됐다. 반면 묘제는 ‘가례’를 따라 일 년에 한 번 3월에 묘소에서 4대조를 포함해서 선조까지 제사를 지내거나, 설, 한식, 단오, 추석의 4명일에 4대조에게 절사를 지내고, 5대조 이상의 선조에게는 한식 또는 10월 초하루에 지내기도 했다. 나아가 사시 묘제가 점차 한식과 10월 초하루로 축소됨에 따라 이를 사시 묘제로서 시제라고 하고, 시제 대상도 5대조 이상의 묘제로서 관행적으로 인식했다. 한편 시제는 흔히 시사(時祀),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국조오례의’에서는 제사의 예(禮)를 그 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즉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사(祀)‘, 지기(地祈)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제(祭)’, 인귀(人鬼)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향(享)’, 문선왕(文宣王,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석전(釋奠)’이라 한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돌아가신 부모를 비롯 조상에 대한 제례는 제향, 시향이라 해야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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