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광 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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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간디의 자서전을 읽었다. 그의 일생을 관통한 실천운동을 두고 ‘사티아그라하’라고 한단다.

사티아(진리)와 그라하(파악, 주장)를 합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을 비폭력 저항운동, 불복종운동 등으로 사용해왔지만 옮긴이는 원뜻을 살려 ‘진실관철투쟁’이라 번역했다.

흥미로운 것은 간디가 40대까지 변호사였다는 점이다. 일거리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진실관철투쟁에 자신을 던지면서 자연스레 변호사 일을 그만뒀다.

나는 여기에 솔깃했다. 성인으로 추앙받은 사람이 변호사에서 진실관철투쟁가로 변한 걸 보면 법의 판단보다 진실이 우위에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서두가 장황했다. 73세 노모가 대기업인 매그나칩 반도체를 향해 진실관철투쟁을 쏘아 올렸다.

이 노모는 2006년 12월 26일을 잊지 못한다. 막내아들이 쓰러진 날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매그나칩 반도체의 가스관리 엔지니어로 9년간 근무했다. 약혼자가 있었지만 장밋빛 꿈도 다 허망한 일이 됐다. 아들은 여전히 식물인간으로 병실에 누워있다.

아들의 병명은 뇌염이었다. 과로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면역이 약해진 것이 입증되면 산재로 인정받는 질병이다. 그는 거의 매일 밤 9시 전후까지 일했고 아르신과 포스핀 등의 유독성 가스를 주로 취급했다.

노모는 당연히 산재보상을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불허했다. 노모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회사가 제출한 출·퇴근 내역부가 아들이 밤늦도록 일한 연장근무 기록이 아닌 컴퓨터 인쇄 글씨로 정시에 출근·퇴근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였다는 것을.

노모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뒤 회사에 직원들이 출·퇴근할 때 찍는 ID카드 확인내역을 법원에 제출해달라 요청했다. 그게 진실을 밝혀 줄 유일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는 끝까지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 법원도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고 회사는 소송과 관련 없는 제3자”라며 확인내역을 강제로 제출받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소송에 시간을 허비하고 대법원 패소 판결문을 받아든 73세 노모는 이제 피켓을 들고 회사 정문 앞에 섰다.

노모는 요구한다. “매그나칩 반도체는 이제라도 ID카드 확인내역을 공개하라, 아들의 출퇴근 진실을 밝혀라”고.

모두들 대법원 판결이 떨어지면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노동법으로 먹고 사는 필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73세 노모의 투쟁을 보니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진실’이 하늘이라면 ‘대법원 판결문’은 손바닥에 불과한 게 아닐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지 않는가 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 말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보니 어머니가 쏘아올린 진실관철투쟁에 나 역시 기꺼이 동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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