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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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병사 하나가 입을 벌린 채 맨 머리로/ 서늘한 물냉이 더미 속에 목덜미를 담그고/ 잠들어 있다; 구름 아래, 풀밭에 사지를 뻗은 채./ 빛이 비 오듯 쏟아지는 초록 침대위에서 창백하게//.....// 향기도 그의 콧구멍을 간지르지 못한다./ 손을 가슴에 얹고서 태양아래 자고 있다,/ 조용히. 오른쪽 옆구리에 붉은 구멍 두 개. - 아르튀르 랭보 ‘골짜기에 잠든 사람’ 부분

전쟁의 광기에 대한 노여움도, 그 참담한 피해 앞에서의 애통함도 읽을 수 없다. 흡사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담담하게 '옆구리에 붉은 구멍 2개'만으로 고요한 계곡 앳된 병사의 비극을 그려낸 이 한편의 시가 세계 반전시(反戰詩)의 걸작이 되었다. 격노보다 가열 차고 흥분상태 없이도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10대 천재시인이 1860년대 후반에 쓴 시를 다시 읽어본다. 프러시아와 프랑스간의 전쟁, 이른바 보불전쟁에서 희생된 이름 모를 소년 병사를 애도하면서 전쟁의 광기,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들의 우둔함과 탐욕을 고발한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올해로 꼭 100년. 개별국가간의 싸움에서 처음 여러 나라가 맞물려 개입한 세계대전의 참화와 후유증은 컸다. 더구나 20세기 초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증유의 피해를 야기했다. 이곳을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가 암살된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 라틴 다리<사진>.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동유럽 현대사를 얼룩지게 한 참극 1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일촉즉발, 전쟁의 암운이 도사리고 있다. 사라예보 시내 곳곳에 내걸린 평화를 외치는 플래카드 너머로 100년 전 포화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듯 했다.<논설위원·한남대 문과대 학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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