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감 연 희
설치미술가

지난 18일, 대만 타이난시 국립 성공대학에서 홍성담 그림전이 펼쳐졌다. 이 전시에는 1980년 5월의 풍경을 담은 판화 50여점과 걸개그림 ‘세월오월’도 문예당 건물에 걸렸다. ‘세월오월’은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서 전시를 거부당한 작품이다.

이 논란은 특별전 개막 이틀 전, 광주시가 걸개그림 ‘세월오월’에 대해 전시를 불허하면서 시작됐다. 아시아의 대표격인 광주비엔날레는 올해 20주년을 맞아 ‘감로(甘露):1980년 이후’라는 주제로 행사를 열고 특별전 ‘광주정신’을 기획했다.

이는 1980년 광주 사건의 아픈 역사를 뛰어 넘어 아시아 민중들과 광주 시민들이 광주를 인권과 평화가 존중되는 새로운 지역으로 재건하자는 취지에서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그중 한 작품이 현임 대통령의 형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당했다. 너무 정치적인 그림이라 국비 지원으로 치르는 행사에 어울리지 않고 광주정신의 승화라는 특별전 주제에도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는 이 행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많은 예술가들에게 큰 상처가 됐다.

이를 두고 예술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검열이라는 비판이 일자 광주시는 전시 여부는 비엔날레재단이 결정할 문제라고 떠넘겼다. 국비 지원과 시 보조금으로 행사를 치르는 재단은 입장이 난처해졌고 결국 개막 당일 전시 유보를 발표했다. 광주시의 치고 빠지는 행보와 재단의 어정쩡한 결정에 걸개그림 파동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문제가 된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정치가, 군인, 관료, 자본가들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지옥도 속에서 스스로 거짓과 범죄가 없는 공동체를 이뤄낸 광주 시민군과 주먹밥 아주머니가 가라앉은 세월호를 들어 올려 학생들을 희망의 길로 구해내고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림 한구석에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그 이유로 비엔날레 측은 전시를 거부했다. 오직 이 그림만, 그것도 그림의 전체 내용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대통령 풍자 요소만 부각되면서 특별전은 찬밥이 됐다. 이러한 풍자조차 허용되지 않는 한국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초청작가인 오우라 노부유키와 독일에서 30년간 활동한 정영찬 화백, 홍성민 등 다른 참여 작가들의 작품 철회와 책임 큐레이터 윤범모 교수의 자진 사퇴가 이어졌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까. 통상적으로 작가와 작품 선정은 큐레이터의 책임이고, 작품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평화 인권도시를 자처하는 광주가 정부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이 작품을 거부한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광주에서 벌어진 국군에 의한 시민 학살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던 자들이 이제 와서 이 그림을 정치 과잉이라고 비판한다는 것은 권력과 자본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기는 노예적 풍토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 비판과 풍자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번 세월오월 전시 금지는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와 이해관계를 낱낱이 드러낸 것이다.

이 논란으로 광주비엔날레는 20년 간 쌓아온 명예에 상처를 입었다. 광주정신의 승화, 예술적 치유와 희망을 이야기하려던 특별전의 취지도 빛이 바랬다. 작품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뒤로 밀려났고 정치적 판단이 개입함으로써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막기 힘들게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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