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글밭]
백 낙 천
배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편지는 한자로 '便紙', '片紙'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종이에 안부나 소식을 간단하게 적어 보내는 서신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종이가 없던 시대에는 대쪽이나 나무판에 글씨를 써서 보냈다. 옛날에는 편지를 서간(書簡)이나 간찰(簡札)이라고도 했는데, 이 명명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편지는 대쪽의 의미를 갖는 간(簡)에서 유래됐으며 이것이 일반화된 것이 오늘날의 편지이다. 편지는 글을 써서 보내는 문자 활동의 하나로서 영어의 'letter'가 문자라는 의미 외에 편지라는 뜻도 갖고 있음은 자못 흥미로운 일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인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편지의 효용과 의미는 매우 컸다. 지금은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전자미디어의 놀라운 변화에 힘입어 요즘에는 편지 대신 이메일로 간편하게 소식을 주고받는다. 종래의 편지가 새롭게 변형된 모습으로 대체됐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메일의 간편함 속에서 때로는 경박스러움을 지울 수 없어 새삼 기존의 편지에 깃든 정성이 그립다. 세태가 그렇다 보니 기존의 편지가 '손편지'라는 이름으로 따로 불리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손편지'라는 말은 아직까지 ‘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이다.

물론 간단한 핸드폰 문자 전송도 용무나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편지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여기에 청소년들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것은 소통 부재의 시대에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청소년들이 조급한 마음으로 속도라는 정체불명의 괴물에 혼을 뺏기거나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가 혼용돼 나타나는 그 기형적 언어가 청소년들의 일그러진 행동 양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더욱이 문자 입력 방식이 한글 창제의 기본 원리인 천지인과 가획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음을 전하는 데에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좋겠지만, 시공을 달리 해 마음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 정성 담긴 편지를 보낸다면 더없이 흐뭇한 일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한글이 창제되고 널리 쓰이는 데에 편지는 대단한 역할을 했으며, 조선 시대에 편지는 거의 유일한 사적 통로의 수단이었는데, 당시 사대부에서부터 이름 없이 살다간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옛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가족 간의 내밀한 사연이 한 편의 편지에 그대로 담겨 오늘에 전해지는 것이 무수히 많다. 그 중 이곳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 안정 나씨 묘역에서 나신걸의 부인인 신창 맹씨의 목관 안에서 복식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편지 2종이 2012년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공개된 적이 있는데, 16세기 당시에 한 남자가 아내에게 애틋한 마음을 절절하게 담아 보낸 내용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그 외에도 대전 선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동춘당 송준길 가문에서 주고받은 편지에서는 당시 사대부들의 교우 관계와 가족애, 집안 풍속, 질병을 앓고 힘들어 하는 모습, 당대의 시대 상황 등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이곳 대전은 면면히 이어져 온 편지의 전통과 가치를 품고 있는 고장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다는 어느 시인의 마음은 이미 노래가 돼 이맘때가 되면 우리의 귓전을 울리지만 이제는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총총히 우표를 사고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의 편지를 보내는 풍경을 이제는 '행복'한 시인 외에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된 것이 우리를 슬프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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