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유성한가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안 그래도 상대에 대한 감정이 미지근하게 되는 걸 느끼던 때에 상대가 말한다. "너 요즘 변했어. 어떻게 사랑이 변해?" 변명을 늘어놓지만 순간 당황한 내 표정을 상대는 놓치지 않았다. 겨우 달래고 안심시켜 넘어갔지만 내 마음 속에 의문의 물결은 오히려 깊어졌다. '정말 내가 변한 걸까?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된 걸까?'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 같은 감정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고 특별히 싫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미지근해 진 것일 뿐이다.

이럴 때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관계가 정말 사랑인 걸까?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헤어지는 게 맞는 걸까? 진정한 사랑은 처음에 느꼈던 감정이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것만을 말하는 걸까?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는 학문인 정신분석에 따르면 우리의 뜨거운 사랑은 대개 자신에 대한 사랑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대방이 보이는 무언가가 내 안의 감정을 자극해서 사랑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 사랑은 상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저 상대방에게 향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쉽게 말하자면 나를 사랑하는 것이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뜨거운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지금 "왜 저 사람을 사랑해요?"라는 질문을 해 보라.

대개의 경우 그 사람의 특성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우리가 사람을 좋아하게 만드는 특징들이 답으로 돌아올 것이다. '착하다, 따뜻하다, 명랑하다, 이해가 깊다' 등등 누구라도 그런 성격을 가졌으면 좋아했을 그런 것들을 이야기한다.

정작 중요한 상대방의 특성은 잘 모른다. 짧은 시간에 상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저 상대방의 외적 특성 중 자기 마음에 있던 이상형과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 자기 안에 있던 자기애가 전달된 것일 뿐이다. 이제 짧았던 허니문이 지나면 상대가 조금씩 보이게 된다. 상대가 보인다는 것은 자기애적 사랑의 시간이 끝나간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상대방의 진면목이 보인다. 요약하면 자기를 사랑하던 사랑에서 타인 즉 자신의 연인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일차적인 사랑에서 이차적인 사랑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둘 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두 사람의 성격과 인간적인 특성이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그들만의 독특한 향기가 나게 된다. 마치 포도와 물이 만나서 전혀 다른 포도주가 만들어 지는 과정과도 같다. 향기가 나는 관계는 서로가 자신을 상대에게 내어줌으로 이뤄진 것 같다.

포도도 물도 자신의 성격을 버렸기에 포도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내 마음을 상대에게 맞추어가고 존중해 가는 것이 사랑을 이뤄가는 것이다. 사랑은 변한다.

뜨겁고 강렬한 것에서 은은한 것으로 변하게 된다. 나를 내어주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이 없다면 은은하게 풍겨나가는 향기를 맡을 일도 없을 것이다. 뜨거움이 사라졌다고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제 나에게는 새로운 사랑, 성숙한 사랑을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또 다른 뜨거움을 찾기 전에 새로 주어진 사랑의 과제를 수행해 보는 것이 어떨까? 사랑은 변하니까 이제 더 깊은 사랑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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