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공황장애·다중인격·사이코패스…
극성 강화위해 영역 파괴… “왜곡된 정보·환상 심어줄 우려”

우울증, 공황장애, 자폐증은 그나마 약과다. 조현병(정신분열), 다중인격, 사이코패스까지 등장한다.

TV 드라마 주인공의 영역 파괴가 이뤄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기시 됐던 정신병을 가진 인물들이 버젓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설정되고 있다. 조연이나 악당 캐릭터가 아니라 당당히 주인공 역할이다.

처음에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처럼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고 일반인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병을 앓고 있더니, 자폐증과 분노조절장애, 투렛증후군(틱장애), 강박증 등을 거쳐 이제는 강도가 최고 등급인 조현병과 다중인격에까지 이르렀다.

극성을 강화하기 위해 동원됐던 암은 이제 너무 많이 써먹어서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할 정도다. 그러다보니 드라마 제작진들이 몸의 병이 아닌 마음의 병, 정신의 병으로 주인공의 '스펙'을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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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를 지켜라' 지성

△자폐증 앓는 천재 외과의·공황장애 앓는 재벌 3세=2011년 SBS '보스를 지켜라'의 주인공 차지헌은 공황장애를 앓는 재벌 3세였다. 지성이 연기한 이 역할은 '초딩'이라는 별명답게 유치하고 철없으며 막무가내다. 하지만 사실은 아픈 과거 탓에 공황장애를 앓고 있고 결벽증도 있는 인물이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였던 까닭에 기본적으로는 코믹한 분위기로 갔지만 지성은 중간중간 가슴을 부여잡으며 공황장애로 고통받는 연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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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녀석들' 박해진

△조현병 앓는 완벽한 외모의 인기 소설가=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이 TV 토크쇼 등에서 연예인들의 경험담을 통해서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병이라면, 조현병은 일반인들이 평소 접하기 힘든 병이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SBS '괜찮아 사랑이야'의 남자 주인공 장재열은 조현병을 앓는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환시를 보고, 잠은 욕조에 들어가 몸을 구긴 채로만 잘 수 있다. 자해도 일삼는다. 상태가 굉장히 심각하다.

그런 장재열을 날이 갈수록 '미모'가 익어가는 조인성이 연기했다. 장재열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인기 라디오 DJ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장재열이 결국 사랑의 힘으로 병을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해피엔딩을 보여줬다.

△사이코패스·다중인격장애·소시오패스=내달 4일 시작하는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주인공은 천재 사이코패스 이정문이다. 한류스타 박해진이 연기하는 이정문은 IQ 160으로, 최연소 철학·수학 박사 타이틀을 가진 천재다.

제작진은 "맑고 순수한 얼굴 뒤의 사이코패스 기질을 숨긴 이정문은 최연소 연쇄 살인범이다"라고 설명했다.

'나쁜 녀석들'은 각종 강력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모아 더 나쁜 악을 소탕하려는 강력계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11부작 드라마로, '더 나쁜 악'을 연기하는 박해진의 사이코패스 연기가 드라마를 이끌게 된다.

△"새로운 소재의 발굴" vs. "병을 왜곡할 위험"=아직 방송되지 않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정신병을 어떻게 그려낼지가 물음표로 남아있는 가운데, 이미 방송된 작품들은 '사랑'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공통분모다. 아무리 심각한 정신질환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과연 현실에서도 '사랑'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까.

용인정신병원 박선철 과장은 "조현병 환자는 장기 치료가 요구되는데 입원을 반복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결국 부모님 말고는 곁에 아무도 안 남게 된다"고 잘라 말했다.

한 제작사 대표는 "자칫 왜곡된 정보나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에 몸의 병이든 정신의 병이든 기본적으로 사실에 기반해 다루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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