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용 환
대전시립박물관장

무더운 여름이나 혹독한 겨울을 지나 살 만한 계절이 돌아오는 환절기가 되면 주위로부터 부고 소식이 잦아진다. 특히 직장인은 한 달에도 수차례 부음을 접하는데, 나이가 들고 교제가 늘어날수록 찾아가 조문할 일도 빈번해진다.

과거에는 밖에서 생을 마치면 객사라 해 오복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에 들지 못한다 했기에 한 세대 전만 해도 임종이 가까워지면 집으로 모시는 걸 당연시했다. 따라서 살던 집에 빈소를 차려 상가로 삼았지만 지금은 예외 없이 전문 장례식장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문상하러 가게 되면 종종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고인에게 예를 표한 다음 상주들과 맞절을 한 후 안면 있는 상주가 먼저 악수를 청할 때이다. 이처럼 조문객과 상주는 위로와 감사의 뜻으로 종종 악수를 하게 된다.

이러한 악수의 기원에 대해 인류학자들은 무기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한 행위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오래전 앵글로색슨계 남자들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을 때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오른손을 내밀어 어떤 흉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 준 것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악수는 중세까지는 약속을 조언하거나 선의를 보여주기 위해 손을 잡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것이 나중에 반가움을 나타내는 인사법이 돼 전 세계에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인사법이자 사회적으로 가장 널리 허용된 신체접촉 수단인 악수라는 행위는 상대방과 기운을 교감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악수는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주로 반가움과 감사의 마음, 그리고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 손을 마주 잡는 것이다.

이러한 악수에도 에티켓이 있는데 나라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기도 하다. 프랑스는 남성과 여성, 초면과 구면에 상관없이 악수를 한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남성 초면자들 사이에는 악수를 하지만 초면인 여성들 사이나 또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잘 알지 못할 때는 악수를 하지 않는다. 우리도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좀처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개인적으로는 악수하지 않는다.

전통시대 우리나라에서도 상대방을 만났을 때 반가움의 표시로, 석별할 때 아쉬움의 표시로 종종 악수를 했다. 우암 송시열이 그와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린 동춘당 송준길을 위해 지은 제문(祭文)에 ‘전에 형의 병 위독할 때 내 깊은 산골에 있다가 듣자마자 급히 돌아와서 손을 잡고 탄식하며 옛날의 소자처럼 농담할 수 있느냐고 묻자…’란 글이 나온다. 그리고 명재 윤증(尹拯)이 친구인 송자문(宋斗章)을 위해 지은 제문에 ‘그때 형이 빈소에 와 곡을 하고서 내 손을 잡으면서 위로해 줬지…’라 하고, 윤증이 고가인이란 또 다른 친구와 헤어지며 지은 시에 ‘두 손을 마주 잡고 슬퍼할 뿐이로세’라 한 구절이 보인다. 앞은 우암이 병 깊은 환자와 뒤는 명재가 빈소에서 상주와 그리고 떠나는 친구와 석별의 정으로 나눈 악수로 모두 위로의 뜻을 담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전통적으로 위문이나 조문시에 악수를 했다. 하지만 글의 정황에서 볼 수 있듯 상가에서 조문할 때 악수는 두 손을 마주잡는 형태이다. 평소 인사로 나누는 한손 악수가 아니라 위로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고 안부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다. 아울러 붙잡은 손을 평소 인사 때처럼 위아래로 흔드는 것도 금물이다. 악수(握手)가 악수(惡手)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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