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진 수
K-water 충청지역본부장

차를 타고 전국 여러곳을 다니다보면 재미있고 특이한 지명들과 마주하게 된다. 물이 흐르거나 물을 보내는 통로를 보통 ‘물길’이라 하는데, 고대이래로 인류문명은 큰강 등 물길을 따라 발전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 황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이집트 문명이 세계 4대 문명 발생지로 알려져 있으며 각각 황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 나일강이 인류문명을 번성하게 했다. 우리나라도 한강, 낙동강, 영산강 그리고 금강 유역을 따라 도시가 들어서고 산업이 발달해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와 마을은 각기 다른 지명으로 불리는데, 특히 물과 관련된 이름들이 많이 있어 그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대표적으로 서울 근교의 양수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난다. 두물머리 빼어난 풍광으로 사진 동호인들이 손꼽는 최고의 출사지 중 한곳이다. 천안시의 병천면은 여러개가 모여 합쳐진다는 아우르다와 하천을 뜻하는 내를 합쳐서 부르는 지명에서 유래한다. 서울 강북구 수유리는 과거에 물이 넘친다는 뜻으로 무너미, 무네미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서울 가좌동은 가재가 많은 내를 음차한 가재울에서 유래하며 인천시, 고양시 등 전국에 가좌동이라는 지명들이 대부분 가재가 많은 동네라는 연원을 가진다.

강원도 원주시 문막은 물막이 동네라는 의미로 물막 또는 뭇막에서 유래한다. 전북 장수는 긴 물줄기의 시초라는 뜻으로, 이곳에 있는 수분치라는 마을은 금강과 섬진강이 서로 나뉘는 갈림길이라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부산시 범내골은 191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무가 울창해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한 곳으로, 호랑이가 내려오는 내라는 뜻을 갖고 있다.

K-water 충청지역본부가 있는 맑은 고을이라는 뜻의 청주시에는 무심천이 있다. 무심천은 시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흐르다가 미호천으로 유입하는데, 청주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지리지에 ‘대교천’이라는 명칭으로 나오는데, 이 지명은 과거에 이곳에 큰 다리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무심천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비교적 설득력이 있는 것은 불교용어인 무심(無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청주시 상당구의 금천동은 예로부터 ‘쇠내개울’이라 불렸다. 이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금을 채취했는데 일제 강점기까지도 상류에 금광이 있었고, 장마철이면 붉은 쇳가루 물이 흘러내렸다고 전해진다. 금이 나오던 쇠내개울은 금속활자본 직지와 철당간으로 대표되는 금속문화의 본거지 청주를 나타내는 지명이기도 하다. 또한 청주시 흥덕구의 운천동은 ‘구루물’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구름 운(雲)과 물이 나는 샘(泉)이 합쳐져서 과거에 수량이 풍부한 샘들이 많았던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청주시 서원구의 수곡동은 ‘물이 많은 골짜기 마을’이라는 데서 생긴 지명이다. 과거에는 초등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애용되던 방죽(무터골, 쑥골방죽)과 마을이 있었던 지역이다.

사람에게 인명(人名)이 있듯이 장소에는 지명(地名)이 있다. 지명속에는 생성 당시 장소의 지리적 환경 특성과 함께 언어적 형태가 자연스레 스며들기 마련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구절처럼 지명도 그 이름을 불러줬을 때 비로서 우리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고향, 지금 살고 있는 동네,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마을의 이름과 유래를 알아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고향, 동네, 마을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나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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