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동 해품터 직지도서관 운영위원장

요즘 우리 아파트 놀이터는 매주 목요일 마다 놀이 꽃이 핀다. 장마철에도, 휴가철에도 한 번도 쉬지 않고 핀다. 누군가 놀이를 가르쳐야 하는 부담도 없다. 그저 우리가 예전에 놀던 사방치기, 진 놀이, 고무줄, 비석치기, 구술치기, 자치기 등이 전부다. 비가 오면 아파트 정자에서 실뜨기, 공기놀이를 한다.

놀이를 시작한지 한 달 반만에 아파트 놀이터가 옛날 우리 어릴 적 동네의 풍경과 비슷해지고 있다. 베란다 창문으로 엄마가 “○○야, 밥 먹어”하고 부르면 “조금 만 더 놀고요.”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놀려고 하는 아이들의 투정이 밉지 않게 느껴진다. 놀이터로 아이를 찾으러 왔던 부모도 “나도, 저거 해 봤는데.”하면서 같이 어울리며 놀기도 하고,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부모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놀이는 사람들의 관계를 변하게 한다. 놀이를 통해 제일 즐거운 변화가 있었던 것은 나와 우리 가족이다. 평소 무뚝뚝하고 잘 어울릴 줄 모르던 내가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인기 있는 동네 아저씨가 되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소극적이었던 우리 딸들은 이제 먼저 놀이를 제안하는 동네 놀이 언니가 되어가고 있다.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변하고 있다. 누구랄 것 없이 친구와 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놀이를 가르쳐 주고, 나이 어린 동생들은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자연스럽게 끼어 주는 깍두기 제도가 있었던 옛날의 언니와 형들의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아파트에서 이렇게 놀이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은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계절별 아파트 생태나들이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됐다. 나들이 뒤풀이로 아이들과 함께 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게시판에 공지를 하였다. 공지를 한 후 그동안 교사들을 상대로 놀이 연수를 한 적은 있어도 아이들과 함께 놀아 본 경험이 없어서 무엇을 갖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 다소 고민이었다. 이 때 지인으로부터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즐겁게 놀면 거울반응에 의해 즐거운 놀이판이 만들어 질 것이고, 놀이감도 어렵게 찾지 말고 우리가 어릴 때 재미있고 즐겁게 놀았던 경험을 살려서 그것을 갖고 놀아보라는 귀중한 조언을 들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우리는 동네에서 형들로부터 놀이를 배우고 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쳐 줬다. 이렇게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놀이문화가 전승됐다. 하지만 최근 10여년 사이의 이런 놀이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장난감, 컴퓨터, 휴대폰이 차지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놀이가 사라진 자리에 인증샷놀이, 왕따놀이, 기절놀이, 셔틀놀이 등 심각한 괴롭힘이 놀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의 놀이문화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한세대가 다음세대에 이어줄 가장 중요한 문화인 놀이는 영영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놀이 문화는 같이 놀아 본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가 살리기 어렵다.

결국 놀았던 경험이 있는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놀이경험을 살려야 한다. 주변의 경험으로 볼 때 어른 10명만 모이면 웬만한 놀이는 다 복원할 수 있다. 오늘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아파트 놀이터나 동네놀이터를 찾아가 아이들과 예전에 놀았던 그 놀이를 통해 세대간 소통의 놀라운 변화를 느끼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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