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아십니까]‘
희대의 연쇄살인조직 ‘지존파’ 인육까지 먹던 엽기적인 행위 김해 여고생 고문 살인 닮은꼴
1994년 무너진 서울 성수대교...리조트 붕괴·세월호 참사까지 부실공사와 허술한 안전점검 예견

2014년 대한민국은 혼란에 빠져 있다. 연이은 대형 참사와 충격적인 사건 속에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란 자조마저 세간에 나돈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여객선이 가라앉는 관경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도 그 안에서 있던 300여명의 안산 단원고 2학년생들과 승객들을 구해내지 못했다. 가출 여고생에게 성매매를 시키것도 모자라 무참히 고문·폭행해 살해한 이른바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 역시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참을 수 없는 참담함 속에 느끼는 생각은 20년 전 그 때를 떠올리게 한다. 잔혹한 연쇄살인마들이 나타나고, 다리가 주저앉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그 일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몸서리치며 분노했고, 그리고 잊었다. 아니 어쩌면 1994년은 대한민국의 트라우마(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로 깊숙히 자리한지도 모르겠다. 떠올리기에도 괴로운 그 때를 애써 기억하게 하는 걸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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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그리고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

지존파로 알려진 이들의 본래 조직명은 헬라어로 야망이란 뜻의 ‘마스칸’이다. ‘지존파’는 이들을 체포한 당시 서울 서초경찰서 고병천 형사가 지어 불린 이름이었다. 김기환(당시 25세) 씨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 일당 7명은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연쇄 살인했다. 이들은 ‘돈 있고 빽 있는 자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는 강령까지 만들어 행동했다. 1993년 5월 살인 연습을 한다며 충남 논산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차례로 강간한 후 살해해 인근 야산에 파묻었고, 같은 해 8월 전남 영광에서 조직을 이탈한 송모 씨도 죽였다.

이들은 1994년 5월 두목인 김기환의 영광 고향 집 지하실에 창살 감옥과 사체를 없애기 위한 소각 시설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집 밖을 분홍색 페인트로 칠했다. 같은 해 9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강남과 경기도 성남에서 남녀 4명을 납치해 3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납치된 사람 중 하나인 여성 A 씨는 살려주면 뭐든 하겠다고 애원해 살아남았지만 지존파의 협박을 받아 자신보다 나중에 납치된 남성에게 공기총을 쏘고 말았다.

이들은 사체를 토박내 인육을 먹기도 했다. 지존파의 엽기적인 연쇄 살인의 전모는 살아남은 A 씨가 도망쳐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이 사건 담당 형사인 고병천 씨는 지존파의 ‘너무 순진한 모습’에 애처로운 마음까지 느꼈고, 급성장한 사회 속에서 빈곤계층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한 사건이란 생각마저 들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부자에 대한 징벌’은 조금도 하지 못한 채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실제 이들이 납치해 살해한 이들은 모두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서민이었다. 엽기적이고 잔혹한 범행 수법면에서 올해 초 발생한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은 1994년의 지존파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B 씨(23) 등 20대 4명과 C(15) 양 등 10대 4명은 가출해 함께 몰려다니며 조건만남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 함께 생활하던 D(15) 양을 살해해 암매장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숨진 여고생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것은 물론 몸에 끓는 물을 붓고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한 후 토사물을 먹게 하는 등의 '고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B 씨 등 남성들은 D 양과 다른 여학생들을 번갈아가며 1대 1 싸움을 시켜 구경했고, D 양을 집단으로 폭행하기도 했다. 결국 D 양은 지난 4월 10일 대구 한 모텔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에서 급성 심장정지로 숨졌고, 이들은 숨진 D 양의 신분을 감추려고 시신의 얼굴 부분을 훼손한 뒤 경남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이들 중 B 씨 등 주범인 남성 3명과 E(15) 양은 일주일 후 대전으로 넘어와 다시 40대 남성을 잔혹하게 살해했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20대들의 엽기적인 살해 행각,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그 잔혹성에 치를 떨고 있다.

그러나 1994년 지존파 사건이 ‘우리 사회의 방치된 빈부격차’의 가장 추악한 반동이었듯 2014년의 여고생 살해 역시 ‘우리 사회의 방치된 폭력성’을 함축하는 지표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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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성수대교와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38분경 서울 성수대교 상부 트러스(직선으로 된 여러 개의 부재를 삼각형이나 오각형으로 얽어 짜서, 지붕이나 교량 등에 도리로 쓰는 구조물) 약 50m가 무너졌다. 사고 지점을 지나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무너진 부분과 함께 그대로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경계선에 걸쳐 있던 승요차 2대도 물속에 빠졌다.

사고 직전 무너지는 부분을 막 통과하려던 시내버스 1대는 뒷바퀴가 붕괴 지점에 걸리는 바람에 차체가 뒤집히며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24명을 포함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명단에는 중·고등학생 9명도 속해 있었다.

한강으로 추락한 승합차에 타고 있던 모두 의경들은 무사히 빠져나와 현장에서 곧바로 구조 활동을 펼쳤다. 당시 성수대교는 이음새가 잘못 되면 무너지기 쉬운 트러스식 공법으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이음새 부분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수였지만, 그런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 조사결과 건설 당시 애초 트러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고, 연결 부분도 심하게 녹슬었으며 다리 위 무게를 분산시키는 이음새에도 결함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당시 볼트를 무리하게 집어넣는 바람에 구멍 모양이 변형돼 이음 강도 역시 약한 상태였다. 성수대교의 설계 하중을 초과한 과적 차량들이 자주 통과한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부실 공사와 안일한 안전점검 및 관리 등이 빚는 예견된 인재.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원종 씨는 사고 당일 오후 7시 바로 경질됐고, 사고 발생 사흘 후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다.

2014년 2월 17일 발생한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역시 무게에 약한 공법으로 건축물을 만들어놓고, 관리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한 예고된 참사였다. 당시 무너진 체육관 안에는 신입생 환영회 행사에 참여한 부산외국어대학교 학생 560여명이 있었다. 그날 오후 8시10분경 체육관 천장에서 붕괴 조짐이 보이자 학생들이 대피하기 시작했지만 체육관 안에는 80~100여명의 학생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결국 학생 9명과 이벤트업체 직원 1명 등 10명이 체육관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숨졌다.

해당 리조트의 체육관은 철제 구조 외벽에 샌드위치패널을 붙이는 PEB 공법으로 지어졌다.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자 부실 시공 논란도 일었다. 부실하게 시공된 것에 더해 리조트 측이 내린 눈을 제때 치우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혔다. 그렇게 또 아까운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최예린 기자 floy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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