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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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인심이 나날이 각박해져간다. 청결상태나 관리는 예전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지만 접근성이나 이용 면에서는 폐쇄와 단절의 벽이 높다.

외국에서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찾기 쉽지 않으니 그럴 법도 하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속도로, 국도 휴게소 화장실은 여전히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하다.

선진 화장실 문화를 선도해온 것이 휴게소 화장실인데 아무런 구매행위 없이도 무료로 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유럽에서도 일부 휴게소 화장실은 개방되어 있지만 상당수는 입장료를 징수한다.

대체로 0.5유로(약 700여원)라는 만만치 않은 금액을 동전으로 기계<사진>에 넣으면 티켓이 나오고 출입이 가능해진다.

용무를 마치고 물건을 구입할 경우 이 티켓을 내밀면 0.5유로를 공제한다.

이런 시스템은 사소해 보이지만 유럽 합리주의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우선 유료이용으로 화장실의 청결이나 쾌적함을 유지할 비용을 마련하고 돈을 내는 만큼 이용객이 줄어들어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이용객의 입장에서 보면 0.5유로를 물건구입에 보탤 수 있으니 그냥 떠나기 망설여진다.

실제로 0.5유로로 살만한 제품은 없으므로 최소한 몇 유로를 지불하면서 고작 0.5유로를 환불받지만 뭔가 큰돈을 되돌려 받은 듯 뿌듯하기까지 하다. 이용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야 할 화장실인데 선심 쓰듯 이용료를 공제해 주는 화장실 마케팅은 치밀하게 계산된 경영기법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경영학, 회계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 같은 여러 분야의 관점을 집약하여 실속을 챙기며 인심 쓰는 척 소비자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하고서도 뭔가 이득을 얻었다는 느낌까지 던져주는 복합적인 화장실 매뉴얼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해볼만 하다.

<논설위원·한남대 문과대 학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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