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에 적발된 전세자금 대출 사기단의 수법을 보면 금융기관의 전세자금 대출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지 엿볼 수 있다.
서민들의 전세난을 해소하고자 도입한 금융권의 전세자금이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이 밝혀낸 금액만 70여억원에 달한다. 맘만 먹으면 사기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항간의 소문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니었다.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77억원 상당의 전세대출금을 편취한 전세자금 대출 사기단 25명과 이들의 사기 행각에 동조한 가짜 임차인 등 모두 112명을 적발했다고 어제 밝혔다. 100명이 넘는 인원이 연루될 정도로 전세자금 대출 사기 사건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들은 전국을 돌며 허위서류로 97회에 걸쳐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편취했다. 수십억원의 전세자금이 빠져나가는 동안 한국주택금융공사나 시중은행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법은 간단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로부터 보증을 받아 시중은행에서 전세자금을 대출받는 것으로 끝이었다. 물론 여기에 사용된 전세계약서와 재직증명서 등은 모두 위조한 것이었다. 대출희망자와 전세계약을 체결해줄 임대인 역시 사기단이 사전에 섭외한 속칭 '바지'들이었다. 서민들의 주택구입에 쓰여야할 대출금은 이렇게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갔다.
서류만 꼼꼼히 확인했어도 사기행각을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 시중은행들은 대출 신청자들이 제출한 서류를 형식적으로 심사한 뒤 돈을 내줬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시중은행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해 부실 서류를 걸려내야 했으나 필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무사안일주의가 낳은 금융 사고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의 도덕적 해이와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감독 소홀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사기단으로 흘러들어간 수십억원은 결국 국민의 혈세로 충당해야 할 것이다.
전세자금 대출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난 이상 마땅히 손을 봐야 한다. 전세자금 대출은 거의 서류심사에 의존하는 만큼 서류심사 강화 방안부터 강구해야겠다. 대출심사를 부실하게 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물어 제재조치를 보다 강력히 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