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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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얼굴은 깊다. 밤의 눈빛은 화려하지 않으나, 그윽하다. 마천루가 된 도시는 세종 동진뜰 밀마루에서 잃어버린 꿈과 잊어버린 언어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2000년 역사의 파리와 런던,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3000년)에 비할 바 못되고, 예루살렘(6000년)에 미치지 못할 남루한 품이지만, 세종시는 더없이 맑게 정진하고 있다.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미국을 세운 영국인 필그림처럼 도시는 이제야 걸음마를 뗐다. 상고시대로부터 백제, 고려, 조선을 거쳐 합쳐지고 떼어지길 수십 번. 그 부침(浮沈)의 세월을 뛰어넘은 ‘세종’은 누가 말해도 이 땅의 행정수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세종과 서울의 괴리다.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은 130㎞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반목하고 있다. 그 거리감은 심리적 분열이자 상실감이다. 물론 갑(甲)은 의원님이다. 툭하면 공무원들을 서울로 불러올려 소통은커녕 호통 치기에 바쁘다. 장관이 뜨면 차관, 국장, 과장도 떠야한다. 그게 관행이다. 이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다른 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장관은 서울, 과장은 길바닥, 사무관은 세종시에 있다는 말은 우스개가 아니라 절규다. 오늘도 서울 뜨내기들은 떠돌이 도시로 내려와 절망의 가쁜 호흡을 내쉬며 엑소더스를 꿈꾼다. 이 얼마나 비효율의 적폐인가.

▶세종의 아침은 서울에서 밝는다. 자조(自嘲)가 아니다. 그렇다고 품고 가야할 푸른 여명도 아니다. 마치 오지의 미개를 탓하는 듯한 얼굴로 세종청사로 출근하는 문명의 포유류들은 ‘아침’을 닮지 않았다. 표독한 맹수의 ‘저녁’을 닮았다. KTX는 서울역에서 한숨을 싣고 달린다. 단잠을 자는 국장도, 쪽잠을 자는 과장도 열차는, 하루를 여는 신선한 ‘속도’가 아니라 육체를 내려놓는 ‘속물’일 뿐이다. 하루 5~6시간을 간이역에서, 길바닥에서 소멸하는 일상은 행정의 궤적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괴다. 이걸 연간 행정비용으로 추산하면 3조~5조원에 이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도권·대전 등지에서 출근하는 공무원 버스 임차비로만 연간 100억원이 쓰이고 있다.

▶고위직들은 죽으나 사나 세종의 ‘텃새’를 마다하고 불편을 감수한 채 ‘텃세’의 삶을 자청하고 있다. 터를 잡은 이는 미혼(88.3%)에다 자녀가 없는(83.2%) 하위직들이다.

세종시 관사를 주말 별장처럼 쓰고, 한 달에 사나흘 머무는데 30억원을 들이는 건 비루먹을 낭비다. 세종시를 수도로 만들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 세종시를 행정중심도시로 완성해야 할 박근혜 대통령….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는 국회를 세종으로 옮기는 것이 행정도시의 참뜻임을 강력하게 고한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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