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전나진 한남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컬쳐전공 교수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주요 문제 중 하나는 남북문제다. 주로 통일문제로 인식되는 우리나라의 남북문제와는 별개로 세계적인 주요 이슈로도 남북문제가 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북반구의 나라들과 상대적으로 빈곤한 남반구의 나라들 간 빈부 격차, 양극화, 자원의 쏠림 등에 대한 문제다.

북반구 서구국가들은 줄서기와 예약, 운전 음주, 약자 배려 등에서 사회 기초질서가 잘 지켜지는 반면, 남반구의 개발도상국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한국 역시 질서의식이 나아진다고는 하나 아쉬운 부분이 많다. 왜 그럴까? 북반구와는 달리 날씨가 온화한 남반구는 식용 식물과 열매 많았고 경작이 가능했다. 경작을 한다는 것은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해 거주한다는 이야기다. 가족단위로 여러 사람이 한 곳에 거주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형성이 되고, 그 일원은 공동체의 일부로서 소속감, 의무 및 권리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 대해 아는 경우, 상대에 대한 판단은 그의 기질과 과거 행동, 그리고 판단자 본인의 가치와 과거 경험, 향후 기대 등 복합적인 요인에 근거한다.

즉 사람과 그의 행동에 대한 판단은 보다 맥락적(contextual)이고, 상황적(situational)이며, 과거, 현재, 미래시점 모두가 개입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상대 또한 나를 이해하리라 믿기 때문에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비언어적(non-verbal), 그리고 암묵적(implicit)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많이 사용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반구는 동식물과 계절에 따라 이동하고 유목했으며, 창과 칼을 들고 사냥을 하며 호전적 기질이 발달했다. 살상 무기를 들고 있기 때문에 서로 잘 모르는 상대간 정확한 의사소통, 규칙과 질서가 중요하다. 정확한 의사소통이라 함은 당사자가 아닌 불특정한 어느 누구에게 말을 해도 모두 똑같이 이해할 수 있는 구술, 즉 논리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분명하고(explicit) 사실적(factual)이며 현재시점 위주이고, 객관성이 모호한 맥락과 상황 등은 배제된다. 서로 호전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규칙과 질서를 따름으로써 나를 보호하고자 한다. 남반구와 비교할 때 북반구 국가 국민들의 기질이 합리성, 객관성, 논리에 기반하고 개인주의적이며 질서의식이 높은 이유에 대한 설명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정적이고 관계적(relational)인 면에서 남반구의 문화에 가깝다. 북반구의 것과 다를 뿐이지 남반구의 문화에서도 그들 고유의 질서가 있다. 한국은 계, 두레, 품앗이, 향약 등 농경문화에 기반한 관계적 성격의 자치규약이 있었다. 이웃과 마을 등 공동체가 중요했다. 그러나 일본 강점기와 전쟁을 거쳐 경제성장을 이루며 경제적, 사회적, 제도적 구조가 변했다. 도시에서 아파트에 사는 직장생활자가 많아지면서 관계와 공동체에 기반한 질서보다는 서구적 개념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질서가 필요해진 것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생을 위해 변화된 환경에 맞는 질서와 규칙을 인식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질서의식은 나아지고 있다. 한 예로, 몇 년 전만해도 화장실에서 한 줄 서기가 흔치 않았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한국은 서구적 개념의 질서를 수입해 현지화(localize)하는 중이고, 언젠가는 이 질서가 우리 고유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수입된 개념의 질서들이 자리 잡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 고유의 질서가 환경에 맞게 변화되지도 않아서 사회 구성원이 상대를 믿지도, 규칙과 질서를 믿지도 않는다면 그 땐 자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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