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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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만해도 전화통화를 하려면 교환수의 손을 꼭 거쳐야만 했다. 이러니 화재신고를 해도 소방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잿더미가 되곤 했다. 1935년 10월 자동화전화가 탄생하면서 교환은 114, 화재통지는 119번으로 정해졌다. 문제는 긴급전화번호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 인도에서 시작돼 유럽으로 전해진 아라비아숫자 공부를 해보자. 단언컨대, 머릿속 회로가 뒤엉킬 것이다. 107(청각언어장애인 통신 중계 서비스), 110(정부 민원안내 콜센터), 111(안보상담), 112(범죄신고), 113(간첩신고), 114(번호안내), 116(표준시각 안내), 117(학교폭력·성매매피해여성신고센터), 118(사이버테러), 119(화재·응급환자 발생신고), 120(생활민원신고), 121(수도고장신고), 122(해양긴급신고), 123(전기고장신고), 125(밀수사범신고), 127(마약사범신고), 128(환경오염신고), 129(보건복지콜센터), 131(기상예보안내), 132(법률구조상담), 134(관광정보안내), 182(미아·가출신고)….

▶난독(難讀)에 가깝지만 좀 더 난이도를 높여보자. 1300(우체국민원안내), 1301(검찰청 범죄 종합신고), 1330(외국인 관광안내), 1331(국가인권위원회), 1332(금융민원상담), 1333(교통정보안내), 1355(국민연금 상담), 1336(개인정보침해상담), 1365(자원봉사센터), 1366(여성 긴급전화), 1369(금융정보조회), 1382(주민등록진위확인), 1388(청소년 상담), 1399(부정·불량식품신고)…. 여기까진 애교다. 1544-XXXX, 1577-XXXX, 1588-XXXX, 1688-XXXX도 있다. 머릿속이 하얘지지 않는가. 대리운전도 단축번호로 부르는 세상에 이 무슨 변고인가.

▶영국과 마카오, 말레이시아, 바레인, 가나, 수단, 솔로몬제도의 긴급전화(경찰·구급·소방)는 999다. 몰디브 102, 미얀마 191, 네덜란드, 러시아, 미국·캐나다는 911, 나이지리아 199, 뉴질랜드 111, 바누아투 112, 오스트레일리아는 000이다. 우리도 이들처럼 하나의 숫자(번호)로 통일할 순 없을까. 만약 강도가 집에 침입했다거나 불이 났다고 치자. 위급할 땐 숫자가 치매에 걸린다. 더듬고 더듬어도 널려진 복잡한 상황들은 지능의 저 편 어딘가에서 혼자 떠돈다. 1억 3200만건의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150억개의 기억세포도 순간 작동하지 않는다. 80만개의 섬유를 매단 시신경줄도 불능이다. 더더구나 어르신들이라면 숫자는 공포다. ‘응급전화번호’가 전혀 ‘응급’하지 않으니 집의 안위나 환자의 생명은 지연된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나서 기억해내는 숫자는 데드 타임(dead time)일 뿐이다. 앞으로도 더 분화할 숫자들의 알고리즘을 생각하니 뒤통수가 아리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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