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왕에게 버림받는 신하…조선과 백성을 지킨 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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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불과 1500명의 군대로 조선군 5만을 격퇴시킨 일본의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순신 장군에게 이같은 애증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장수이다. 하지만 그는 유독 이순신과의 전투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승리 없이 패만 쌓았다. 그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미움과 동경 이 두 감정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유다. 이처럼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장군을 그린 영화가 나왔다. 세계 장수의 흠모를 받는 장군, 성웅 이순신을 담은 영화 ‘명량’이 그것이다.

이순신, 그는 분명 뛰어난 장군이다. 하지만 그는 또 그래서 슬픈 장군이었다. 그가 가진 이 뛰어난 능력은 오히려 그에게 독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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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백성들과 부하들의 절대적 신임과 지지를 받는 그의 존재는 늘 선조에게 눈엣가시였다. 이순신은 선조에게 점점 더 갈수록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자신의 명보다는 늘 조국의 안위와 백성을 중요시 여기는 이순신이었다.

그의 이러한 충(忠)또한 선조에게는 탐탁지 않았다. 선조 자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주로 피난을 떠났지만 이순신은 왜군에 맞섰다. 이순신은 해전에서 승리하며 큰 공을 세웠다. 이순신을 향한 백성들의 더 큰 지지와 신뢰가 돌아왔다.

선조는 이를 용납하지 못했다. 결국 선조는 이순신에게 죄를 씌운다. 선조는 조정을 기만해 임금을 무시한 죄로 이순신을 백의종군에 처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왕에게 버림받은 충신이다. 그의 충은 왕이 아닌 나라와 백성을 향했고, 이에 왕은 분노했다.

하지만 국가 존망의 위기 앞에 놓인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선조는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순신이라도 이미 기울어진 승패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선조는 뒤이어 이순신에게 육군에 편입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영화 ‘명량’이 주목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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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선조의 명대로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이순신은 남았다. 조선을 버리지 않았다. 그에게 바다를 버리는 것은 곧 조선을 버리는 일이었다. 이순신은 절망에 빠진 조선을 꺼내기 위해 생사를 걸었다. 최후의 일전을 결심한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조선 그리고 백성을 향한 이순신의 충이었다. 그렇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 명량해전이 시작됐다.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나타날 것이다.” 전의를 상실한 조선의 수군을 걱정하는 아들 이희에게 이순신이 한 말이다. 당시 조선의 수군은 왜군에게 대패해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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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은 승산 없는 전투였다. 병사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이 두려움을 용기로 변화시키기 위해 이순신은 먼저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뒤를 따르지 않는 11척의 배를 억지로 부르지 않고 홀로 적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이처럼 죽음을 무릅쓴 장군에 힘입어 병사들은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결국 이 전쟁은 기적 같은 승리를 이뤄냈다. 이순신, 왕에게 버림받는 신하.

하지만 그는 조선과 백성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한편 ‘명량’은 1597년 임진왜란 6년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진구, 이정현 등이 출연한다. 128분. 15세 관람가.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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