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백성이 주인인 세상’… 양반착취에 맞선 의적

? ?
?
? ? ?
?

영화는 씁쓸함을 남긴다. 관객이 준비해간 화살은 결국 표적을 잃고 표류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자신을 맡기던 이들에게 어쩌면 이번 영화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얄밉게도 관객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는 표면적으로 선(善)과 악(惡)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의적 떼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도치(하정우 분)는 그러한 선을 대표한다.

그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화려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인물이다. 부족하지만 모자라지 않는 삶이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러운 비극이 찾아온다.

? ?
?

그는 타들어 가는 불길 속에서 가족의 죽음을 그저 지켜만 본다. 어머니의 몸 위로 거센 불길이 내려앉았고 동생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망연자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련을 겪은 그는 이제 그저 순응하려 했던 세상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상을 만든 것은 세상 그 자체일까. 아니면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인가. 비극적이게도 답은 후자다. 영화 속 조윤(강동원 분)은 도치와 대치하는 인물이다. 그는 나주 대부호이자 전라관찰사인 조 대감의 서자다.

? ?
?

조윤은 계략을 써서 도치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로 인해 단란했던 도치의 가정은 손쉽게 파괴된다. 또 그는 백성들을 착취하고 핍박한다. 약함을 강함으로 누른다. 강함에 짓밟히는 약함은 애처롭다.

또 그는 조선에서 제일가는 무관이다. 얼핏 보면 분명 아쉬울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늘 공허하다. 만족이 없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한다. 이를 그저 쉽게 탐욕으로 치부해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기에는 껄끄럽다. 마음 한쪽이 불편하다. 조윤의 삶에는 그림자가 져 있다. 햇빛을 받지 못해 차게 시들어간 화분 속 꽃을 닮았다. 분명 누구보다 화려하게 피어났을 꽃이지만 현재의 그는 빛깔조차 없다. 그의 인생은 힘겨웠다. 늘 남들보다 한발 더 빨리 그리고 한발 더 높이 올라야만 했다. 그는 이 고단한 삶 속에서도 늘 한줄기 햇빛을 갈망했다.

? ?
?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인정. ‘서자’라는 굴레에 갇힌 그의 삶은 암흑과 다름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는 아버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아버지의 시선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시리고 지독한 외면이다. 그의 악행은 결국 이러한 결핍을 채우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은 아니었을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가졌어도 정작 자신이 원하는 단 하나를 얻지 못한 사람이다. 어찌 충분하다 할 수 있을까.

어느새 영화 속 선과 악의 경계는 불분명해진다. 흐려지고 지워진다. 선악을 넘어 애초에 이들은 모두 버림받은 존재들일 뿐이다. 세상 또는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라는 존재에게서. 지친 일상에서 비난의 대상을 찾으러 들어 온 이들에게 이 영화는 반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예기치 않은 가르침을 안겨준다. 인간은 때때로 선악의 경계에서 헤매다 또 때로는 그 경계를 허문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이유를 찾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화살의 표적을 돌려라. 당신이 당연히 비난해야 할 악인은 아쉽게도 이 안에 없다. 악인과 선인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이 영화 ‘군도’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강동원, 이성민, 조진웅 등의 배우들이 출연했다.

? ?
?

영화는 양반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13년을 배경으로 한다.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 힘없는 백성의 편이 돼 백성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적떼인 군도(群盜), 지리산 추설과 백성의 적 조윤의 한 판 승부를 담았다. 137분. 15세 관람가.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