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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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다급할 때 무슨 '똥개' 부르듯 119부터 찾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아닌데 집나간 강아지를 데려오라고 징징거린다. 현관문 따기, 처마 밑 말벌 쫓기, 멧돼지 잡기는 그냥 덤처럼 여긴다. 심지어 대통령 취임식 때는 의자 닦는 일까지 한다. 어떨 땐 보험외판원처럼 다중이용업소를 돌아다니며 화재보험에 가입하라고 애원도 한다. 예산이 부족하니 몸으로 때우고, 쉬는 날엔 장비수리와 잡무처리로 말로만 3교대다. 무엇이든 해내는 만능이니 '맥가이버'라고 칭하지만 현실은 공구통의 '드라이버' 신세만큼이나 처량하다. 평균수명 58세, 임용 5년 내 이직률 20%, 집단우울증 40%…. 최근 10년간(1998~2007년) 숨진 소방공무원이 200명이 넘는다. 6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비율이 국내 일반 남성의 15배다.

▶소방관의 몸은 '움직이는 병동'이다. 간암, 폐암, 뇌졸중, 호흡기질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 등 한 가지 이상씩의 병을 달고 산다. 아픈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사용연한을 넘긴 '깡통 소방차'를 타고 고전 분투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더 아프다. 하지만 소방전문병원이 전무해 경찰병원에 더부살이로 얹혀 몸을 고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소방관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들은 기도한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화재발생 후 5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야 초기 진화가 가능하다. 심정지(心停止)도 5분 안에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국민들은 '응급'하지 않다. 구급차 사이렌이 울려도 길 바깥으로 피하지 않는다. '응급'을 알리는데 '응답'하지 않으니 소방차만 애가 탄다. 앰뷸런스에 자신의 가족이 탔다고 생각해보자. 아니면 자기 집에 불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리법석을 떨 것 아닌가.

▶소방관을 쉬게 하라. 불이면 불, 구급이면 구급만 하도록 놓아주라. 현관문이 잠겼으면 차라리 ‘니돈’ 만원 주고 열쇠공을 불러라. 자기 돈 아까운 줄은 알면서, 남의 생명 아까운 줄은 모르는 건 축생의 짓이다. 이런 인간들이 소방차 늦게 와서 자기 집 홀딱 태우고 나면 지랄 지랄할 게 뻔하다. 소방관 목숨 귀한 줄은 모르고 자기 강아지 목숨은 귀중하게 여겨 울고불고 난리칠 게 분명하다. 매월 평균 64시간 초과근무, 100명당 6벌 꼴에 불과한 낡은 유해물질 보호복을 입고 소방관들이 뛰고 있다. 당신이 소방관들에게 SOS를 보내고 있을 때 오히려 소방관들이 세상을 향해 눈물의 SOS를 치고 있는 것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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