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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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오전 9시, 농부는 평소처럼 자신의 매실밭에 올랐다. 야산 밑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계단식 밭(田) 아래쪽에는 고추를 심고, 위엔 수박씨를 뿌렸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밭을 한 바퀴 둘러보던 그는 한쪽 풀숲이 꺾여 눕혀져 있음을 발견했다. 이상하다고 여겨 수풀을 헤집는 순간 농부는 화들짝 놀랐다. 심하게 부패해 뼈까지 보이는 시신이 구더기와 함께 발견된 것이다. 80%가량이 이미 백골(白骨) 상태로 주검은 온전치 못했다. 겨울용 점퍼에 벙거지를 쓴 시신의 행색이 마치 노숙자 같았다. 주검 옆에는 소주병과 막걸리병, 지팡이, 낡은 신발이 놓여있었다. 습한 비가 억수로 내리던 아침의 일이다.

▶경찰과 검찰은 유구무언(입은 있으나 할 말이 없다), 유병언은 무언(유언 없이 입을 닫음)이다. 도망자 유·(병)·언이 망자가 되어 돌아왔다. 송치재 별장인 ‘숲속의 추억’에서 은신하다 사라진 그는 불과 2.4㎞밖에 달아나지 못했다. 경찰은 연인원 145만여명을 동원하면서도 66일간 헛발질만 하며 농락당했다. 변사체를 옆에 두고 금수원→신도집→별장만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유병언은 죽어서 왔지만 의문점은 여전히 살아있다. 매장된 시신은 7~10년, 땅 위에 노출된 시신은 1년가량 지나야 완전한 백골이 되는데 발견 시신은 18일만에 부패됐다. 온전치 못한 삶이었으니 죽음마저도 온전치 못한 것인가.

▶1987년 오대양사건 때 32명이 집단변사했다. 구원파 열성 신도들이었다. 사건의 주역인 박순자는 구원파의 대전지역 책임자로 신도들을 회개(자아비판) 시킨다며 몰매를 때렸다. 이러다 죽으면 암매장했다. 검찰수사결과 박 씨가 모금한 돈의 일부는 구원파 본부의 유병언에게 전달됐다. 이때 유 씨를 사기죄로 기소해 징역 4년을 받게 한 심재륜 당시 대전지검 차장은 "교회에 돈을 바치면 지구에 종말이 왔을 때 공중으로 들림(휴거)을 받는다는 것이 교리의 핵심"이라고 회고했다. 죽음은 단죄가 아니다. 용서 또한 아니다. 구원파 교주 유병언은 그 어느 누구도 구원하지 못했고 스스로도 구원받지 못했다.

▶유병언의 죽음은 사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300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또한 여전히 진행형이다. 쉼표,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인 것이다. 그 눈물은 아직 그치지 않았다. 눈물이 바다를 적시며, 우리의 가슴도 잠겼다. 우리의 믿음도 잠겼다. 꽃잎처럼 흩어진 가여운 이들을 묻은 맹골수도(孟骨水道)의 울부짖음을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다.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오늘이 세월호 참사 100일째 되는 날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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