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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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꽃이 아닌 이상, 남 앞에 서는 일은 초라하다. 더구나 나무토막처럼 물외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허세를 부려 봐도 오지랖 넓게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다. 꽃은 보이기 위해 존재한다. 남이 보지 않으면 그건 꽃이 아니다. 때문에 꽃은 '화들짝' 피어 여행객의 '찰나'를 노린다. 삶과 죽음의 근거지를 옮기는 사람과는 달리 꽃은 제자리서 피었다가 온전히 그 자리서 죽는다. 그냥 끝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씨를 한 줌 뿌리며 철저하게 생몰의 연대를 기억한다. 그래서 풀꽃이 아니라 불꽃이다. 어느새 꽃다운 나이가 가고, 꽃답게 소멸할 일만 남았다. 그 장렬한 연소를 어찌할 것인가.

▶꽃이 아닌데도, 남 앞에 섰다. 막내가 다니는 학교의 명예교사가 되어 진로교육을 한 것이다. 자식 앞에 서는 일은 당황스러웠다. 며칠 전부터 뒷방에 숨어들어 리허설도 했건만 발음은 명쾌하지 못했다. 'ㄱㄴㄷㄹ'이 'ㅋㄸㅃㄸ' 경음으로 혼절했다. 교단에 선 '중년의 꽃'은 계면쩍게 웃으며 '청춘의 꽃'들 앞에서 붉게 타올랐다. 하지만 꿈을 이야기하고,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하자 아이들은 밝게 화답했다. 아들 또한 새하얀 찬사를 보내줬다. “아빠, 참 잘했어요.♡” 카톡에 찍힌 그 격려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찍어준 ‘참 잘했어요’란 도장보다도 더 먹먹하게 가슴을 울렸다.

▶자식은 '꽃'이다. 만개한 숭어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민다. 멋진 차를 가지지 못했고, 넓은 집을 갖지 못했지만 그는 나에게 '꽃'이 되어주었다. 학원을 몇 탕 뛰어도 돈 걱정 안할 만큼 떵떵거리며 살지 못하지만 기꺼이 '꽃'으로 피었다. 아들은 '난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한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이 괜찮으면 된다'는 완곡한 반어법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입에서도 '난 괜찮다'는 방언이 바스락거린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아이들에게 더 먹이기 위해 배부르다고 말한다. 새하얀 거짓말에서 침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서 '꽃'이 부럽다. 늙어가면서도, 처자식에게 기대지 않는 그 꽃의 정령이 부럽다.

▶꽃처럼 살지 못해 가끔은 두렵다. 꽃처럼 박수를 받지 못해 때로는 가엾다. 콧등 뜨거워지는 여름날의 오후, 나는 시름을 꼭 쥐었다. 그리고 복식호흡을 했다. 꽃처럼 하늘거리지도 못하니 숨은 뻣뻣하다. 쉬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멈추지 않으며 달려가는 인생의 행로가 얼마나 위압적인가. 어쩌면 입을 다물고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덜 초라할지도 모른다. 저 멀리서 꽃이 타고 있다. 여름에 보는 꽃은 '샛'이라는 접두사에 꽃불을 켜고 빛난다. 꽃이 되지 못하지만 꽃을 마주하는 것은 여름날의 호사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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