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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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좀 논다 싶은 애들은 우멍거지가 채 여물지도 않은 나이부터 술을 입에 댔다. 술은 동시에 여자들에 대해서도 눈뜨게 했다. 자유분방한 색정광이 된 아이는 첫 관계를 하고 나서 훈장을 단 것 마냥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 통정의 신(scene)들은 너무 세세했고 적나라했다. 인간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감정을 인수분해 할 수는 없었지만, 꽤나 지켜보기 불편했다. 하지만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않으려고 버틴 게 맞다. 먼저 금기를 깨고, 반기를 드는 반항아의 이미지가 질풍노도의 가슴에 휘몰아쳤으니…. 세월이 흘렀어도, 그 때 사춘기 격정의 에피소드는 머릿속을 지끈지끈 들쑤시며 숙취처럼 따라다닌다. 비련의 몰이해다.

▶술은 핏속에 응고된 망각의 저승사자다. 절망이 방바닥을 구르고 희망이 땅바닥을 굴러도 비주류를 주류(主流)로 만드는 진정한 주류(酒類)다. 품어주고 안아주고 용기 주는 삶의 아스파라긴산, 한 움큼씩 알약을 먹어가면서도 끊지 못하는 금단의 물, 살벌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배신 않고 따뜻한 체온으로 건배하는 의리, 한 모금 들이켤 때마다 목청에서 터지는 이 땅의 위선과 분노, 정신과 육체의 저질스러운 감전, 미치지 않기 위해 마시는데 결국은 미쳐가는 야누스의 얼굴. 이는 지독한 아세트알데히드의 저주다.

▶혹자는 전쟁, 흉년, 전염병을 다 합쳐도 술이 끼치는 손해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에디슨은 술이 두뇌를 빼앗는다 해서 평생을 입에 대지 않고 살았다. 어떠한 술이라도 뒤끝 좋은 놈은 없다. 두주불사들은 숙취도 재미라고 하고, 그것마저 사랑할 때 진정한 술꾼이 된다고 강변한다. 고통도 맛있게 삼키면 통증이 가라앉는다면서. 하지만 초심자든 고수든 일단 통음하는 순간부터 통증이 온다. 비우기 위해 마시는데 비워지지 않는다. 버리고 또 버리는데 자꾸만 가득해진다. 생각의 뒤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아, 잊을 수 있겠구나'하다가도 위장을 비워내야 오롯이 잠을 잘 수 있게 만든다. 표독스러운 이율배반이다.

▶365일 중 절반가량을 술에 절어 산다는 싸이의 노래 '행오버(hangover)'는 숙취란 뜻이다. 잔존물, 부작용, 후유증…. 하나같이 여파가 남는 토사물들이다. 술에 취해 넋두리처럼 쏟아내던 말들, 필름 끊김, 숙취로 퀭한 출근길, 멍하게 보내는 오전, 후회와 반성, 그러나 도돌이표처럼 저녁이 되면 다시 술잔을 드는 착란의 일상들…. 세월호에 빠져 휘청이던 대한민국이 잠시 월드컵에 취해 행오버에 젖어들고 있다. 기분 좋은 숙취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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