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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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3년 봄, 조선의 고을에 가뭄이 닥치자 이재민과 아사자가 속출했다. 세종은 자책했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다. 내가 죽인 것이야.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다." 자연재해가 잦았던 당시, 세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비판의 소리에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 그는 직언하기를 당부했고, 일단 재해가 발생하면 온 마음을 기울여 대책을 세웠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사람의 힘’에 따라 대처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종의 리더십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악역'을 맡았기에 가능했다. "천하의 모든 악명은 이 아비가 짊어지고 갈 것이니, 주상은 만세에 성군의 이름을 남기시오." 이방원은 권력의 곁불을 쬐며 알짱거리는 처남 네 사람에게 사약을 내렸고, 세종의 장인인 심 온(沈溫) 또한 스스로 자결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평생 동지 이숙번을 귀양 보내면서 "내가 죽은 지 100년이 되어도 도성의 땅을 밟지 못하게 하라'고 단호하게 명했다. 책임있는 사람, 책임질 그 누군가가 있어야 후대가 평안해짐을 알았던 것이다.

▶1781년, 규장각 제학(提學·차관급) 김종수가 정조의 태도를 지적한 6개항의 상소문을 올렸다. "작은 일에 너무 신경 쓰시면 큰일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눈앞의 일에만 신경을 쓰는 건 겉치레입니다." 정조는 김종수의 지적에 대해 "작은 것을 잘해야 큰 것도 잘할 수 있는 법이다. 과인은 작은 것을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국정관을 이해시켰다. 임금에게 대놓고 '지적질' 한 김종수도 놀랍지만 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당당하게 ‘적시’했던 정조의 담대함이 더 놀랍다.

▶자고로 난세다. 임금의 길인 거둥길(어도·御道)은 왕만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여럿이 걷는 길이다. 참담한 세월호 사건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역린(逆鱗·임금의 분노)의 주동자, 살생부를 논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박근혜 대통령‘만’의 잘못인가. 아니면 이명박, 이명박 그 이전 대통령들이 싸놓은 오물을 지금 설거지하고 있는가. 어쩌면 서서히 침잠하고 있던 재앙의 근간이 일시에 무너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오지랖 넓게 매사를 다 챙기는 대통령의 리더십도 문제이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허둥대는 관료들도 문제다. 이러니 임금의 역린이 아니라, 국민의 역린이다. 저, 맹골수도 세월호의 눈물은 국민의 피눈물이다. 또한 냉골의 바다에서 죽어간 청춘들의 두려움이 곧 우리의 두려움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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