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비통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왔다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배가 침몰한 이후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했다. 침몰 직전 구조된 '174명' 이외에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다.

살아 돌아오리라는 실낱같은 기대와 간절한 희망이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의 아이들'이 수장되는 것을 망연자실,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이 참담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사랑하는 가족을 차디찬 바닷물 속에 남겨둔 채 찢어지는 아픔에 몸서리치는 유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의 슬픔이 진도 앞바다의 거친 파도만큼이나 소용돌이치고 있다.

선장과 선원의 후안무치함과 반인륜성에 대한 말은 이제 신물이 난다.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화가 나는 것은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구조시스템이다.

사고 발생 2주가 지났는데 시신도 제대로 수습을 못 하는 무능함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재난위기에서 신속한 초동대처는 피해의 최소화를 위한 기본 수칙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구조작업의 초기 단계에 늑장대응은 물론, 비효율적이고 어설프게 대응함으로써 피해가 더 커졌다고들 지적한다. 이러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다. 이러한 미션을 수행하라고 국민들은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고, 막강한 권한도 위임해주었다. 그런데 위임해준 권한을 자기들 뒷배 불리는 데 쓰거나,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한다면 그러한 정부는 존재 이유를 잃게 된다. 배가 침몰하는데도, 구명정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우리 안전관리의 현주소다.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 그러한 기업에 사람의 생명이나 환경 문제 등은 별로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자고 나면 터지는 기업비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대참사의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안전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을 들고 있다. 선박의 용도변경과 탈법적 운영 등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관리·감독만 잘했어도 대참사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선박에 이상이 있어 개보수 요청이 있었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무리한 운항을 강행한 선박회사와 선주에 대한 감독권을 정부가 제대로 행사했더라면 이렇게 부끄럽고 슬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안전운항관리업무를 선박회사의 이익단체에 불과한 해운조합에 위임하여 이른바 '셀프감독'을 하게 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거듭나지 못하면 또 다른 참사의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거창하게 기업윤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정책은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반드시, 그리고 엄격하게 규제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것들이다. 이러한 것을 담보로 규제 완화를 해서는 안 된다.

시스템을 잘 갖추지 않으면, 그리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더 이상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재난안전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상흔(傷痕)이 깊지만, 정부는 이제부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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