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전나진 한남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컬쳐전공 교수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듣길 원한다. 여기서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 믿음, 지식, 가치관, 바램 등과 부합하는 내용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러한 성향에 어긋나는 내용에 대해 약간의 저항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처음 보는 사람, 잘 알지 못하는 내용,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행동 등을 접할 때 약간의 긴장감과 심리적 불편함을 겪게 되는데 이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

인지 부조화 이론은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정치학, 소비자 행동론 등 많은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관심의 초점이 인간이 인지 부조화를 겪는다는 것 자체보다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피하거나 줄이는지에 있다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를 피하거나 줄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나 그중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이 바로 정당화하기, 즉 핑계 대기이다.

잘 알려진 이솝우화 중 여우와 포도 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넝쿨에 탐스럽게 달린 포도에 닿을 수 없어 그것을 먹을 수 없자 "저 포도는 분명 신 포도일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포도를 먹고 싶은 바람이 행동과 부합하지 않자 인지 부조화를 겪게 되고, 이를 줄이기 위해 포도를 평가절하해 포도에 닿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회복한다는 논리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많은 순간 이 여우가 된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헛걸음했을 때 ‘덕분에 바람을 쐴 수’ 있었던 것이고, 투자하고 잃었을 때 ‘처음이니까 괜찮을 수’ 있고, 계획에 실패했어도 ‘경험을 얻었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인지 부조화를 줄이는 이러한 ‘핑계’들을 통해 부정적으로 보이는 일들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정신적 현상유지를 회복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이로울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개인의 핑계 대기가 사회의 핑계 대기가 될 때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무단횡단을 하니까, 쓰레기 무단투기를 하니까,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니까, 다른 애들도 그 아이를 왕따 시키니까 등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통해 나의 부조화적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다. 타인의 행동이 내 행동에 대한 기준이자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 개개인의 가치와 그에 따른 행동은 어디로 갔을까? 인간의 행동에 대한 판단이 본인의 내재적 성향보다는 환경과 상황에 지배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제기된 바 있다.

한 유명한 실험으로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한 건물 지하를 감옥으로 꾸며놓고 자원자를 대상으로 간수와 죄수의 역할을 시켜 지켜본 결과 간수들은 권위와 권력에 기반에 두어 잔인해져 갔고, 죄수들은 점차 굴복하고 복종했다.

권위와 권력으로 잔인함이 정당화될 때 죄수들이 겪었을 인지 부조화는 사라진 것이다. 다른 간수들이 잔인하니까, 다른 죄인들이 복종하니까, 이러한 집단 핑계 대기가 합법성에 뒷받침될 때 강력한 독재와 권위주의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갖춰진 셈이다.

업무처리에서는 어떤가? 내가 아는 원칙과 업무처리규정보다는 항상 하는 일이고, 지금까지 별 이상 없었고, 남들 모두 그렇게 하는 상황에 기대어 나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집단 핑계 대기가 세월호 대참사를 낳은 것은 아닌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실종자들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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