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폐합·정원감축 얘기 꺼낼라
동료 교수들 전화해도 안받아
사업안 제출 촉박 밥먹듯 야근
본업 강의준비는 엄두도 못내

# 1. 지난해부터 대학 구조개혁의 하나로 학과 통·폐합 및 정원 감축을 추진해 온 A 대학 B 교수는 교수들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그는 "IMF 때 명예퇴직을 진두지휘하는 인사 담당자가 된 듯한 기분이다. 구조개혁 업무를 맡게 되면서 친하게 지내던 교수들조차 함께 식사하기를 꺼린다. 내가 전화하면 정원 감축 이야기를 할까 봐 그런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2. C 대학 D 교수는 지난 몇 달간 대학 특성화 사업단을 준비하면서 야근이 부쩍 늘었다. 교육부가 특성화 사업 본 접수를 이번 달로 못 박으면서 사업단의 규모와 사업내용을 세밀히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발전과 학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성화 사업단에 지원했는데 하루걸러 야근하고 있다"며 "한국의 모든 대학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지만, 매일 사업 준비만 하느라 강의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교육부가 대학 특성화 사업과 정원 감축을 골자로 한 구조개혁을 추진하면서 업무를 맡은 교수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가 지시한 대로 비슷한 학과를 통·폐합하고, 정원을 줄이느라 교수사회에선 '왕따'를 당하기 일쑤고 사업을 준비하느라 본업인 강의도 소홀해졌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특성화 사업 및 구조개혁을 맡아야 하는 보직 교수를 꺼리는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보직 교수는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짧게는 1년 6개월에서 길게는 4년까지 직(職)을 맡아 업무를 보는 것이 대학가의 관행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각 대학에 특성화 사업안과 구조개혁안 접수 마감을 촉박하게 통보하는 등 업무 강도가 강해지자 임기 도중 그만두거나 거부하는 일도 발생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구조개혁 업무를 맡은 처장급 교수가 밤샘 업무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와병이나 다른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보직 해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대학가에서는 '구조개혁 담당 교수를 만나면 학과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괴소문이 퍼져 보직 교수들은 친분이 있는 동료 교수들과의 관계도 서먹해졌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대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연락이 닿으면 구조개혁 대상에 오를 것이라는 인식이 퍼진 탓이다.

대학 구조개혁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다른 교수가 '남의 학과 정원 줄일 생각 말고 당신 학과 정원부터 감축하라'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들었다"며 "대학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업무를 맡았지만 괜히 수락했다는 후회가 막심하다"고 전했다.

이형규 기자 h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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