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방황하는 칼날’
어느날 동네 목욕탕에서 시체로 발견된 중학생딸
익명의 문자로 범인들의 주소를 알게된 딸의 아빠
호기심으로 죽였다는 소년범들에게 복수를 하는데

▲ 방황하는 칼날 홈페이지 캡처

자식을 잃은 아버지는 부서진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이 모든 피해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게는 ‘용서’라는 단어를 꺼내기조차 어렵다.

그 슬픔은 타인이 무게 내릴 수 없고 감히 그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 속에서 아버지 상현(정재영·사진) 역시 자식을 잃는다.

상현의 하나뿐인 그리고 아직 중학생밖에 안 된 딸 수진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하필 그가 야근으로 딸을 마중 나가지 못한 날 결국 그의 딸은 버려진 동네 목욕탕 안에 있었다. 차가운 바닥 위에 더 차갑게 식은 채로….

딸의 죽음 앞에 아버지는 무력하고 또 무력하다. 멍하니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추운 겨울 산에 앉아 벌벌 떨고 있으면서도 딸에 대한 그리움이 가시지를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상현에게 범인의 정보를 담은 익명의 문자 한 통이 도착한다.

그리고 문자 속 주소대로 찾아간 그곳에서 그는 가해자를 발견한다. 가해자 철용은 소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죽어가는 내 딸의 동영상을 보며 웃고 있다. 마치 개그프로그램을 보는 듯이.

딸을 죽인 건 18세 소년들이었다. 그냥 호기심이었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이란 없다. 딸을 잃은 그의 세상은 온통 무채색으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가해자의 세상은 아직까지 너무 밝다. 범죄라는 무거운 그림자가 아직 그의 인생에 드리우지 않았다. 상현은 이성을 잃는다. 우발적으로 철용을 죽인다.

상현은 철용 외에 딸을 죽인 또 다른 공범을 알게된다. 그의 복수는 다시 시작된다. 부모와 자식, 하늘이 내려준 인연을 강제로 끊어버린 이에게 그 죗값을 물으러 상현은 걸음을 쉬지 않는다.

상현은 이제 두개의 이름표를 달아야 한다. 한쪽은 그가 원래 가지고 있던 ‘아버지’ 그리고 다른 한쪽은 ‘살인자’.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를 세상은 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수진이 살인사건의 담당 형사인 억관(이성민)은 철용의 살해현장을 본 후 상현이 범인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영화의 줄거리다. 상현은 과연 딸의 복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으로 불린다.

그는 비단 미스터리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시도한다. 특히 사회의 정곡을 찌르는 문제제기를 좋아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현재 사회를 점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함께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2012년 11월 개봉했던 영화 ‘돈 크라이 마미’다. 이 영화 역시 법과 정의라는 갈림길에 관객을 세워둔다.

이 영화에서는 성폭행 당한 딸의 가해자들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는다. 가해자 측의 부모들은 합의금으로 이 상황을 무마하려 한다. “법이 도와주지 않으면 엄마가 도와줄께.” 엄마는 말한다. 결국 엄마는 딸을 잃은 상현과 마찬가지로 가해자들에게 복수한다.

이 영화들은 이 참혹한 현실을 그저 관객들에게 지켜보라고만 한다.

그리고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것이 ‘어긋난 부정’인지 아니면 ‘정의의 실현’인지. 잔인하게도 법이 아닌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이제 누구에게 칼날을 돌리겠는가.

감성보다 앞선 이성이 있어야하고 법이란 원칙에 좌절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한 아버지. 영화화를 위해 7년이라는 시간을 견딘 영화 ‘방황하는 칼날’ 10일 개봉. 이정호 감독. 정재영·이성민 주연.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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